POPARI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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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한국 전쟁 당시 첩첩산중 산골마을인 ‘동막골’로 흘러들어간 남·북한 군인들이 티 없이 맑은 주민들과 얽혀 지내는 과정을 소개한 영화 <웰컴투 동막골>이 관객몰이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팝콘이 눈처럼 내리는 장면을 꼽는다. 며칠째 잠도 자지 못하고 대치하던 남·북한 병사들이 불발이 된 줄 알았던 수류탄을 무심코 던진 것이 옥수수 저장고에 떨어져 폭발하게 되고, 폭발과 함께 옥수수는 팝콘이 되어 우수수 떨어진다. 과연 수류탄이 터지면 옥수수가 팝콘으로 변할 수 있을까.
                  

(나) 한적한 동네나 시골 장터를 일순간에 잔치 분위기로 바꿔놨던 ‘뻥튀기’를 언뜻 생각해보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라는 외침과 함께 만들어져 나오는 ‘튀밥’이나 ‘강냉이’는 온도와 압력 사이의 관계를 이용한 것이다. [밀폐된 용기에 쌀이나 옥수수를 넣고 온도를 높이면 용기 속 압력도 올라가게 된다. 이 때 닫혀 있던 뚜껑을 갑자기 열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쌀이나 옥수수가 부풀어 오르게 된다.] 즉, 옥수수 내부의 압력이 외부 압력보다 커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팝콘은 이와는 다른 원리로 만들어진다.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모든 물질은 액체에서 기체로 될 때 부피가 크게 증가한다. 예컨대 물 한 방울이 수증기로 변하면 부피가 약 1800배 가량 증가해 PET병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렇게 물(수증기)의 부피가 늘어나는 것이 팝콘을 튀겨내는 힘이 된다. 팝콘용 옥수수에는 15% 가량의 수분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팝콘 옥수수 알갱이 속에 포함된 수분이 열을 받아 수증기로 변해 부피가 늘어나다가 알갱이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이다.   

(다) 그렇다면 강원도 옥수수가 수류탄이 터질 때 팝콘으로 튀겨져 눈처럼 내릴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는 않다. 같은 옥수수라도 팝콘용 옥수수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팝콘용 옥수수와 강원도 옥수수를 비롯한 모든 옥수수는 같은 ‘종’이다. 그러나 같은 사과라고 하더라도 부사와 홍옥 등 종류와 특성이 다른 품종이 있는 것처럼 팝콘용 옥수수와 강원도 옥수수도 서로 다른 ‘아종’이다. 강냉이는 흔히 찰옥수수라고 하는 ‘납질종’으로 만든다. 그러나 팝콘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인 ‘폭립종’뿐으로,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품종이다. 팝콘이 아메리카 인디언에 의해 백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라) 그런데 마침 그때 수분을 듬뿍 머금은 강원도 옥수수가 있었다면 팝콘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역시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팝콘용 옥수수는 강냉이용 옥수수보다 전분의 밀도가 높다. 즉 강냉이용 옥수수보다 딱딱한 것이다. 옥수수가 터지는 임계온도에 도달하기까지 외부에서 열만 가해 주면 딱딱한 외피에 의해 내부 압력이 쉽게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강냉이용 옥수수는 전분의 밀도가 낮기 때문에 설령 수분이 많더라도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옥수수를 밀폐된 공간에 넣고 외부에서 열을 가함으로써 쉽게 임계압력에 도달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는 별다른 기구 없이 집에서 사용하는 냄비만 가지고도 쉽게 팝콘을 만드는 것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팝콘을 만들다 보면 옥수수인 채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팝콘용 옥수수에 흠집이 있어서 수분이 수증기가 되어 팽창하긴 하되 폭발하지 못하고 날아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김이 샌 것이다.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면 팝콘용 옥수수를 바늘로 찔러 튀겨 보라.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 영화 속의 장면에서 강원도 옥수수가 터진다면 팝콘보다는 강냉이가 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것 같다. 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이 장면은 ‘옥에 티’이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강원도 옥수수가 팝콘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관객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중요한 소품이 되었으니 속아 줄 만하다.

-김경숙 <영화 ‘…동막골’속 ‘팝콘눈’의 진실>에서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