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같이 갈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아내가 같이 산엘 가자고 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 보았다. 입이 귀가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미술관으로, 생일 잔치로 각자 친구를 찾아 나섰다. 내가 배낭을 챙기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커피를 끓이고, 장갑과 모자를 챙겼다. 아내가 같이 간다는 것이 이리도 즐거울까?
오후 1시 관악산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사람은 그리 없고 내려오는 사람으로 길이 꽤 찼다.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평탄한 길에 눈이 얼어 있는 부분은 미끄럽기까지 했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나는 삼막사로 길을 잡았다. 내가 주로 가는 길은 바위를 타는 험난한 코스였으나, 아내를 생각해 편한 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눈이 왔는데 아직도 녹지 않아 온통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눈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등산로는 하얀 눈이 깔려 미끄러웠다.
역시 아내는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않아 다리에 힘이 부족했다. 얼마 안 가 씩씩 숨소리가 거칠다. 이러한 때 조급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의 등산로는 약간 뛰다시피해서 오르지만, 오늘은 아내를 생각해서 자주 쉬기로 했다. 난 아내를 바위에 앉히고 뜨거운 블랙 커피를 권했다. 설탕의 달콤함과 프림의 부드러움은 없는 블랙 커피는 산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도 마찬가지인지 먹지 않던 블랙 커피를 잘도 마신다. 이렇게 난 아내와 이심전심이 된다.
삼막사로 가는 길목인 능선에 올랐다. 우리는 절로 가지는 않기로 했다. 전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산은 사방을 둘러 보는 재미로 가는 것인지 모른다. 아내는 사방으로 둘러 보는 것으로 만족했따. 눈이 오는 것인지, 아니면 봉우리에 남아 있던 눈이 흩날리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허공으로 눈 송이들이 드문드문 날렸다. 마음 속으로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내와 오랜만에 산에 올랐는데 그 만한 자연의 이벤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눈송이는 없었다. 아쉬웠으나, 어쩌랴? 하늘에 떼를 쓸 수는 없지 않는가?
역시 내려오는 길은 긴장이 되었다. 눈이 얼어 있어 미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난 아내의 손을 잡아 내려 주기도 하고, 미끄럽지 않은 곳을 찾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넘어진 것은 나였다. 자만심은 산에서 금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어느 정도 내려 오니 평탄한 길이 나 왔다. 아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역시 아이들 얘기는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승민이와 하늘이 진학 문제를 가지고 생각을 나눴다. 결론은 아이들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기로 하였다. 영재학교를 가든, 특목고를 가든, 아니면 일반 고등학교를 가든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존중하기로 했다. 다만 학원은 될 수 있으면 보내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려는 태도와 능력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아니 뿌듯한 것이다. 학원에 많이 안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승민이가 연세대학교 영재센터에, 하늘이가 서울교대 영재센터 심화반에 합격한 것은 분명 우리의 자랑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중 1학년, 초등 5학년생을 둔 부모가 이렇게 아이들은 돌보지 않고 산에 오를 여유가 있다는 것은 행운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산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몰라도 눈동자가 맑아진 느낌이라며 좋아했다. 아내가 즐거워 하는 모습은 곧 내 마음을 즐겁게 만든다. 거기에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같이 산에 가자는 선물을 안긴다. 내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다. 역시 아내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