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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어는 실제 상황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서의 언어를 언어학 연구의 주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사회적 요인과 언어와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발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 언어학이다. 사회 언어학은 기존의 언어학(순수 언어학)과 차이를 보인다. 순수 언어학이 언어를 하나의 독립된 추상적 체계로 파악하는데 대해, 사회 언어학은 사회와 관련된 구체적인 기호 체계로 본다. 그리고 언어를 기술할 때 순수 언어학은 완전히 동질적인 언어 공동체를 상정하고 완전히 추상된 언어 자료를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사회 언어학은 언어 공동체를 본질적으로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실제의 언어 자료를 대상으로 한다. 또한 순수 언어학은 화자의 내재적인 언어 능력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사회 언어학은 언어 수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언어 자료를 포함시킨다.
그러면 언어를 왜 독자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사회적인 맥락에 따른 구체적인 언어로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문법적으로 맞는 문장을 구사했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현민아, 이리 와.’라는 문장을 보자.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 이상이 전혀 없다. 이 문장은 ‘현민’이라는 명사에 호격 조사 ‘-아’가 붙어 문장의 독립 성분을 이루고, ‘너는’이라는 주어를 생략하고 ‘이리’라는 부사어와 ‘오다’의 명령형인 ‘와’를 서술어로 하는 명령문이다. 그런데 이 문장을 어떤 학생이 ‘현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에게 했다면 이 문장은 이상한 것으로 느껴지게 된다. 언어를 이해할 때 화자와 청자의 관계와 같은 사회적인 맥락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다음으로 문장의 궁극적인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언어를 달리 봐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말이 행해지는 특정한 상황을 고려하면 문장의 궁극적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와 장소를 생각해야만 이해될 수 있는 발화도 사회 언어학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준다. 같은 친구라도 만약 공식적인 학급 회의 석상이라면 말투가 달라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때와 장소를 감안한 언어 이해가 매우 필요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순수 언어학에서는 문장의 적절성 여부를 문법성에만 두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적절성을 평가해야 할 필요성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언어는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심리학적인 현상 및 사회학적인 현상과 밀접하게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다. 누구든지 언어를 객관적으로, 체계적으로 기술하려고 하면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영순 <사회 언어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