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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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처럼 그 시대에 주로 사용된 재료에 따라 구분된다. 그렇다면 현대는 어떤 시대일까? 과학계에서는 오늘날 문명을 흙의 시대, 즉 세라믹이 좌우하는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건축물에서부터 각종 전자제품, 심지어 화장품까지 흙을 소재로 만든 세라믹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세라믹(Ceramics)이란 고대 그리스어의 ‘케라모스(Keramos)’ 즉 ‘흙으로 만들어진 또는 불에 태워서 만든 물건’이란 말에서 나왔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열을 가해 만든 비금속 무기 재료’로 정의된다. 용어의 정의로만 보면 세라믹은 2만4000여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진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재료이다. 하지만 현대의 세라믹은 원료를 정제해 보다 작은 크기의 입자로 이뤄진 고강도의 재료를 뜻한다.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런 세라믹은 최근 입자 크기가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로까지 줄어들 정도로 더 정밀해지고 있다.

  세라믹의 강점은 도자기에서 알 수 있듯 열에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섭씨 100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끄떡없는 것이 많다. 용광로에 이용되는 세라믹스 내화(耐火)벽돌, 우주왕복선의 외부 표면을 덮고 있는 3만3000개의 세라믹 타일 등은 세라믹의 이와 같은 성질 덕분이다. 세라믹은 마찰에도 강해서 흠집이 잘 나지 않아 세라믹 시계케이스는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예물시계에 쓰이고 있다. 세라믹은 흙을 원재료로 하지만 전자제품 재료로도 각광받고 있다. 반도체가 대표적인 예다. 금속과 달리 전기를 반 정도만 통과시키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세라믹은 압력을 받으면 전기를 흘릴 수 있거나, 반대로 전기가 흐르면 형태가 변하는 압전(壓電) 효과도 갖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전기를 흘려 휴대전화기에서 ‘삐삐’ 소리를 내게 하거나 가습기처럼 떨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일상생활에서도 세라믹은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됐다. 새집증후군은 포름알데히드라는 물질이 주범인데, 이러한 유해물질을 세라믹 페인트가 효과적으로 잡아준다. 고급 정수기에는 세라믹 필터가 수돗물을 더 맑게 걸러주고 있다. 화장품에도 미세한 세라믹 분말이 들어가 미백효과를 낸다.

  최근에 세라믹은 자동차나 스포츠 등 레저 분야, 항균·세정 등 환경 분야, 연료전지 등 에너지 분야, 의료·생체 분야 등 차세대 융합기술의 핵심 소재로도 각광받고 있다. 세라믹은 이미 자동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회전수에 맞춰 휘발유를 태우는 것을 담당하는 세라믹 스파크 플러그, 환경 문제의 주범인 자동차 매연가스를 잡는 세라믹 허니컴 촉매담체(honeycomb catalyst substrate), 전기가 흐르면 모양이 변해 충격흡수 장치로 이용되는 피에조 세라믹 센서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라믹은 스포츠 분야에도 이용된다. 독일에서는 2006 동계올림픽의 스키점프 종목에 세라믹을 적용시켰다. 기존의 착지대는 에나멜로 표면을 처리한 금속판을 사용했는데 이를 세라믹 재료로 대체함으로써 시속 100㎞ 이상으로 날아오는 스키도 바로 멈출 수 있게 했다. 한편 세라막은 의료 분야에도 이용될 수 있다. 세라믹 재료가 포함된 IC칩은 심장 박동 조절장치에 들어가는데, 활성화시키면 전기가 발생해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

  앞으로는 환경정화용 세라믹, 연료전지용 세라믹, 핵융합로용 세라믹, 전자정보용 세라믹, 인공뼈·인공관절·인공 치아같은 바이오 세라믹스 등 더욱 다양한 세라믹 제품이 선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 세라믹학회는 원래 벽돌 제조업자들의 모임으로 시작됐다. 그렇지만 지금은 IT, BT 등 다양한 분야에 세라믹을 적용하는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세라믹은 결코 한물 간 노병이 아니다.

- 이영완 <도자기의 진화-세라믹>에서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