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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9일 오전 11시 48분 마침내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이미 1시간 전부터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을 감지한 사람들이 있었다. 오전 10시 35분. 한국지질자원연구원(KIGAM)에 있는 지진연구센터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계획한다고 발표한지 6일만에 인공폭발로 추정되는 지진파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지진연구센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10월 17일 미국이 북한 핵실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까지 우리 국민들은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공중음파를 탐지하고 지진파를 분석하면 지진인지 인공폭발인지 구분할 수 있다. 인공폭발은 자연지진과 달리 지표면의 공기에 압력을 가하면서 사람이 듣기 힘든 저주파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자연지진에서는 P파가 지진파 진행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진동하고 S파는 지진파의 진행방향과 수직으로 진동하기 때문에 S파 진폭이 크게 나타나나, 인공폭발에서는 폭파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에너지가 퍼지기 때문에 P파의 진폭이 S파보다 더 크게 나타난다. 그런데 철원에 있는 관측소에서 20Hz 이하의 저주파가 감지되었고, 간성관측소와 원주관측소의 지진계에는 P파가 강하게 나타났다가 곧이어 상대적으로 진폭이 작은 S파가 등장한 후 표면파가 마지막으로 거칠게 움직였다. 이로써 북한에서 인공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었다.
지진파로 인공폭발을 확인했다 해도 핵실험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폭탄을 터뜨렸는지 여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지진의 규모인데, 북한에서 발생한 지진이 리히터 규모 3.6으로 인도 파키스탄의 그것에 비해 훨씬 낮아 진짜 핵실험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었다. 핵실험의 결정적인 증거는 핵폭발이 일어나면서 나오는 방사능 물질이다. 방사능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양이 평소보다 많다면 핵실험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북한으로 건너가 방사능 물질이 나왔는지 확인해볼 수는 없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바람에 실려 오는 방사능 물질을 낚아채야 한다. 우리 나라에는 방사선량을 측정하기 위한 관측소가 38개 있다. 강릉지방방사능측정소에서는 오전 10시에서 다음날 10시까지 매일 측정하고 있지만 별다른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부분에서 지질연구센터의 고민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미국은 핵실험의 증거로 방사능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미 공군은 대기관측기를 동해상공으로 보내 방사능 물질을 탐지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방사선 관측소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증거를 미국 정찰기는 어떻게 탐지할 수 있었을까? 미국방부는 정찰기가 찾아낸 물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크세논(Xe)과 크립톤(Kr)으로 추측된다. 크세논과 크립톤은 핵분열할 때 많이 나오는 불활성기체로 특수 제작된 탄소필터로 걸러 낼 수 있다. 우리나라 12개 방사능 관측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사능 물질은 일종의 고체다. 기체인 크세논이나 크립톤은 검출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인공폭발을 감지한 이틀 후 급하게 스웨덴에서 크세논 검출기를 들여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핵실험이냐 아니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연구원들에게 던져진 또 하나의 골칫거리는 진앙을 찾는 문제였다. 만약 핵실험이 확실하다면 지진파의 진앙이 핵실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진파가 도착한 시간을 알면 진앙까지 거리를 계산할 수 있고, 관측소가 3개 이상만 되면 거리를 반지름으로 해 원을 그려 겹치는 부분에 있는 진앙을 찾을 수 있다. 지진파는 진앙과 각 관측소 사이의 지질구조가 다르면 도달하는 속도가 다르고 측정하는 관측소 위치도 큰 영향을 준다. P파의 속도는 초속 7~8km다. 0.5초 오차만 생겨도 3~4km 오차가 생긴다. 관측소 위치도 문제였다. 미국은 중국 하얼빈 부근 무장단에 관측소를 갖고 있어 여러 각도에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진연구센터는 처음에 남쪽에 치우친 관측소의 데이터만으로 계산했고 뒤늦게 중국으로부터 추가 자료를 받아 분석하면서 진앙지를 수정 발표해야 했다.
미국은 북한이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실험을 했다고 결론지었지만, 지진파 진도로 보면 제대로 폭발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정밀한 기술로 폭발을 차단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핵실험의 목적이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라기보다 정치적인 이유가 많아 실험의 진위를 판가름하기는 더 어렵다. 그나마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여건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나으련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북한 핵실험으로 인해 수많은 가설과 이론이 난무한 것도 그 이유이다. 진앙지를 찾아 갈 수도 없고,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방사능 검출장비를 급하게 들여오는 현실, 그 현실이 연구원들의 씨름을 더욱더 힘겹게 만들고 있다.
-<북한 핵실험 분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