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선생은 조금 더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신 선생은 김 선생에게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 선생은 그 애와 얘기를 나눈 것도 있고. 그 애와 함께 오는 친구에게도 들은 것도 있다고 했다. 아까 자기와 얘기를 나눈 학생이 그 애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선생은 그 때까지 자기가 알고 있던 기진이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 애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 안 되는 수입 때문에 부모들은 자주 싸웠고, 아버지는 술 먹고 폭력을 자주 휘둘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애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급기야는 어머니가 가출을 했고, 그것으로 인해 아버지는 더욱 그 애를 못살게 굴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서 지금은 할머니 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제야 신 선생은 얼마 전의 전화 통화가 생각났다. 기진이가 결석을 했을 때 집에 전화를 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쪽에서 알아 들을 수 없을 만큼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힘없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진이의 어머니를 찾았을 때, 없다고 하면서 자신을 기진이 할머니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 선생은 더 이상의 결석은 곤란하니 빨리 애를 내 보내라고 간단하게 말을 남겼다. 저쪽에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거듭 되는 소리를 ‘앞으로 3일입니다.’는 짧은 한 마디로 일축하고 전화를 끊었던 것이다.
김 선생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 애는 오토바이를 무척 갖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여자애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다니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그 애가 가출한 이유는 그 여자애 때문이라고 했다. 그 여자애가 부모에게 야단을 맞고 가출을 해 버리자 그 애와 함께 있기 위해 자기도 가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까 그 애와 연락을 하면서 돈을 빌려 생활했다고 한다. 그 애에게도 돈이 없자 오토바이를 훔친 것 같다고 했다. 김 선생은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그 친구를 불러 얘기를 다 들었다는 것이다.
신 선생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 선생이 말한 것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고, 가정 환경 조사서를 비롯한 어떤 서류에도 그런 것을 적을 만한 난이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은 상담을 통해 알아 보면 된다. 그러나 신 선생은 그 애와 상담한 것은 지각과 결석 건에 관한 것이었음을 기억해 냈다.
“선생님, 외람된 말씀을 하나 드려야겠군요. 그 애가 담임 선생님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왜 제 이름을 댔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까 제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기진이를 아느냐고 했을 때, 선생님은 선생님 반 29번이라고 했죠. 그리고 그 애가 어디 사느냐고 물었을 때 선생님은 신림 5동에 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애에 관해 아는 것은 서류 상에 있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도 확인하지 않으셨구요.”
신 선생은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김 선생을 바라보았다. 김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드릴까요? 어떤 인류학자가 어느 두 마을을 조사하러 갔었대요. 이런저런 것을 조사하다가 하나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두 마을 모두 염소가 아주 중요한 재산이었는데, 한쪽 마을의 염소 수가 다른 쪽의 염소 수보다 많았대요. 그러나 염소의 털빛이나 생산되는 젖의 양은 정반대로 다른 쪽 마을이 더 좋았다는군요. 그래서 그 이유를 인류학자는 알아보려고 관찰을 했대요. 얼마 후에 인류학자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김 선생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어 갔다.
“바로 염소를 기르는 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거였어요. 염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마을에서는 염소에 번호를 매겨 관리하고 있었대요. 1번 염소에게는 사료를 하루에 몇 번을 몇 킬로그램을 주고 몇 시간 동안 운동을 시키고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던 거죠. 그래서 염소의 수는 많았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까 염소들은 별로 행복해 하지 않는 것 같았대요. 반명에 다른 쪽의 마을은 염소를 다른 방법으로 키우고 있었어요. 그 마을 사람들은 염소들을 부를 때 얼룩아, 이쁜아, 한쪽아 등으로 불렀답니다. 염소들의 특징을 살펴 본 다음에 이름을 붙인 거죠. 그리고 먹이를 줄 때도 ‘너 오늘 더 먹고 싶은가 보구나, 그러다 배탈난다’고 말하면서 사료를 주었대요. 그래서 그 마을에는 비록 염소의 수는 적었지만 염소들이 행복해 했기 때문에 더 좋은 털과 많은 젖을 얻을 수 있었던 거래요.”
김 선생은 여기서 잠깐 얘기를 멈췄다. 그리고는 따가운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신 선생 쪽의 창문을 한 번 바라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신 선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아까 보았던 수선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선화가 윤기 있는 꽃잎을 자랑하며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아까는 하지 못했던 생각을 신 선생은 했다.
그 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 예, 바꿔 드릴까요? …… 예, 알았습니다.”
김 선생은 전화를 끊고 신 선생에게 말했다.
“구 선생님이 빨리 오라시는데요.”
“아, 예.”
그때서야 신 선생은 구 선생을 기다리게 해 놓은 것이 생각났다. 신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 선생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눈가의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신 선생은 가봐야겠다고 하면서 양호실 문을 나섰다.
운동장의 모습이 신 선생의 눈에 들어 왔다. 아이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축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낯이 익은 얼굴들인 것 같았지만 여전히 신 선생에게는 하나의 점으로 보였다.
그때 마침 공이 신 선생 쪽으로 날아오는 바람에 움찔 놀랐다. 그 공은 저만치 가더니 경사진 길을 따라 또르르 굴러 다시 신 선생의 발앞으로 돌아 왔다. 얼마 있어 한 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왔다. 그 아이는 신 선생을 보자 엉거주춤 섰다. 신 선생은 자신 앞에 와 있는 공과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공을 들어 아이에게 주며 물었다.
“너 몇 학년 몇 반이니?”
“1학년 3반인데요.”
그 애는 신 선생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1학년 3반이면 신 선생이 가르치는 반이었다. 그래서 신 선생은 이리저리 아이를 보며 수업시간에서의 그 아이 모습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아이의 얼굴은 찾을 수가 없었다. 신 선생의 머릿속에는 책상에 앉아 있는, 35명 정도의 교복 입은 학생만이 나타났다.
“공, 여기 있다.”
신 선생은 아이에게 공을 넘겨 주었다.
“참, 너 내가 누군지 아니?”
“1학년 2반 담임 선생님이요.”
“아니, 내 이름 말이야.”
이 물음에 그 아이의 얼굴빛이 긴장했다. 그리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모르겠는데요.”
신 선생도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때 수업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났다. 저쪽 1학년 12반 교실에서 어리버리 정 선생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자신을 졸졸 따르며 뭔가를 열심히 말하는 한 학생의 말에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이고 있었다. 신 선생은 공을 찾으러 온 학생을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얘야, 혹시 내 별명은 없니?”
“선생님 별명이요?”
그 애는 좀 생각해 보려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 애는 이내 모르겠다는 말을 또 했다.
그렇군.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모르고 지내고 있었군. 저쪽에서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정 선생과 학생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 소리는 교정을 따라 울려 퍼졌다. 신 선생은 잠시 그들을 본 뒤 불안해하는 아이를 잠시 보다가, 가 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머뭇거리다가 뒷걸음치면서 발을 옮기고는 이내 달음질치며 자신의 친구들에게로 갔다. 그 친구들도 신 선생 쪽을 잠시 보다가 이내 자신들의 일에 몰두했다.
신 선생은 그 아이들의 모습을 잠시 더 보았다.
‘그래 너희나 나나 숫자덩어리였구나. 이름을 잃어버린 숫자덩어리.’
신 선생은 하늘을 바라 보았다. 차가운 하늘이 자신에게 따가운 햇살만을 내리붓고 있었다. 그와 함께 신 선생은 온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계절 탓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따갑고 텅 빈 하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