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이름(6/4)

詩 속에서 2008. 5. 30. 13:01
 사실 정 선생은 학교에서 ‘어리버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 별명은 애들에게도 통용되었으나, 정 선생은 그것에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도리어 그런 별명을 부른 학생이 저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며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정 선생의 모습은 빈틈없는 신 선생과 늘 비교되었다.

  지난 고3 담임을 같이 맡았을 때도 그랬다. 신 선생은 애들 관리를 잘했다. 야간자율학습 참여율만 해도 신 선생 반이 학년에서 늘 수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정 선생 반은 늘 처졌다. 매일 교무실에서 정 선생은 자기네 반 애들과 자율학습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가 정 선생이 설득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 애는 가방을 싸들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한번은 교장이 정 선생에게 그 반의 야간자율학습 참여율이 저조하다며 한 마디 하는 것 같았다. 그 때 정 선생은 ‘애들이 싫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애들 의견도 존중해야죠.’, ‘집안에 사정이 있다고 해서 보냈습니다.’ 등등의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신 선생은 그 얘기를 옆에서 듣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애들 사정을 왜 봐줘.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건데. 

  신 선생은 애들과 대화를 길게 나누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이 사정 저 사정 다 듣게 되어 자신이 판단을 내리는 데 복잡하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해야 행동하기도 편하다는 것은 신 선생의 처세술의 근간이었다. 그래서 애들이 교무실로 내려와 자율학습에 빠지겠다고 어쩌구저쩌구 하면 ‘그냥 올라가. 예외 없어’하고 딱 잘라 말한다. 그래도 말 안 들을 때는 몇 대 쥐어박으면 일은 간단히 끝난다. 그리고는 ‘그것이 다 너를 위한 거야’라는 이 한 마디로 자신의 조치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학년초에 몇 번 하면 자연스럽게 애들은 순종했다. 아니 포기한다고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신 선생은 어렵지 않게 자율학습 참여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것은 다년간의 교직 경험을 통해 얻은 신 선생의 문제 해결법이었다.

  그런 신 선생을 교장은 좋아했다. 신 선생 또한 교장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심전심은 3학년 진학지도 시에 진가를 발휘했다. 그때 교장이 교감으로 있을 때였다.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그는 여러 가지 일을 벌여 자신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입시에서의 진학률이었다. 그것도 명문대 합격률이 중요했다. 그 외 대학 진학률은 학부모들이 신경을 쓰지 않으니 적당히 묶어 처리하면 되었다. 그리고 명문대 합격률만 크게 내 보이면 학부모들은 이 학교가 참 좋은 줄 안다. 교장은 3학년 담임 회의에서 ‘학부모들의 바람’이라는 것을 자꾸만 강조하면서 명문대 합격률을 높이라고 독려했다. 신 선생은 그 말의 의미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곧 이어 신 선생은 자신의 실력 발휘를 유감없이 해냈다. 서울대, 고대, 연대에 가지 못할 애들은 알아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 오라고 했다. 그러면 봐서 예상 커트라인에 맞춰 입학지원서를 써 주었다. 그리고 나서 서울대 갈 애들은 다양한 변수를 생각하면서 학과를 선택하게 했다. 소수점까지 계산했으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변수까지 고려했다.

  그런데 한 애가 문제였다. 대학을 낮춰서라도 물리학과를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애였다. 그 애에게 서울대 농대를 한번 더 지원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애는 싫다고 했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과를 왜 지원하느냐는 것이었다. 신 선생은 ‘밑져야 본전이다. 봐서 합격하면 좋지 않느냐. 과도 중요하지만 학교 간판이 더 중요하다. 네가 사회에 나가 보면 다 안다.’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그 애를 설득해 나갔다. 물론 적당한 시기에 ‘네 맘대로 해’라고 하며 엄포를 한번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애에게서 나타나는 예상되는 반응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 애는 결국 물리학과를 지원해서 합격했음에도 서울대 농대에 또 지원해서 합격했다. 신 선생의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그 애는 끝내 서울대 농대를 가지 않았다. 그래도 신 선생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통계에는 서울대 합격으로 이미 잡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세대 물리학과에도 통계가 잡힌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학부모들에게 보여주는 통계가 그럴 듯하기 때문이다.

  신 선생 덕분에 학교의 서울대 진학자가 한 자리 수에서 두 자리 수로 늘었다. 9명과 10명은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데 큰 차이가 있었다. 교장은 그런 신 선생의 공로를 잊지 않았다. 이번에 다른 선생들의 눈치 때문에 1학년 담임을 맡겼지만 내년에는 다시 3학년 담임을 주겠다고 은근히 교장이 말해 주며 신임을 강조하였다.

  이에 반해 서울대에 한 명도 보내지 못한 정 선생이 교장으로부터 한 소리 들은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물론 정 선생의 반에도 과를 바꾸면 서울대 갈 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성이 어떻고, 꿈이 어떻고, 장래 전망이 어떻고 등등을 늘어놓으며 그 애와 밤늦게까지 장시간 얘기를 나누더니 보낸다는 것이 대학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 밖의 애들도 상위권 애들과 똑같이 했다. 그래서 퇴근도 늦게까지 하지 못하곤 했다. 그 결과 정 선생은 며칠 간 끙끙 앓아야만 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봤던 신 선생은 자신이 다년간 배운 효율적인 방법이 다시 한번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다음에 계속>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