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이름(6/2)

詩 속에서 2008. 5. 30. 12:59
 누군가 툭 치는 바람에 신 선생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빨리 오지 않고 뭐하냐고 하면서 지나가는 구 선생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신 선생은 대답 대신 씩 웃어 보이고, 통계표를 다시 한 번 쭉 훑어 본 다음, 흐믓한 미소를 지으며 서류함에 넣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잰걸음으로 구 선생의 뒤에 붙으면서,

  “오늘은 안봐 드립니다.”

하고 말했다. 신 선생은 구 선생이 많이 쓰는 수를 이제 웬만큼 알 것도 같았다. 귀에서 최소한 열 집만 더 확보하여 안정을 확보하고, 중앙 싸움에서 크게 한 번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그렇다면 오늘 두 배로 올리는 것이 어때?”

  “좋죠. 그런데 저는 파릇파릇한 거 아니면 안 받습니다.”

  “염려 말게. 오늘도 자네가 낼 테니.”

  무슨 소리냐고 하면서 신 선생은 더욱 호기 있게 말했다.

  둘은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돌을 나누면서 구 선생이 물었다.

  “학습 지도안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요. 전에 있던 거 낼 겁니다.”

  “교육과정이 바뀌었잖아?”

  “바뀐 게 뭐 대숩니까? 가르치는 건 다 똑같아요. 그리고 윗사람들이 옛날 것과 지금 것을 구별할 수 있겠어요? 그저 자기네들도 형식적으로 도장이나 찍어될 텐데 뭐 하러 신경씁니까? 괜히 그런 데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필요 없습니다.”

  구 선생은 그건 그래 하면서 바둑돌을 집어 들고는 첫 수를 두었다.

  “특기 적성 교육 교재는 어떻게 할 건데? 지난 번에 출판사 문제집을 썼다가 감사에 걸렸잖아.”

  “그렇다고 안 씁니까? 대충 쓰고 서류에는 직접 만들어 프린트해서 나눠줬다고 쓰면 되잖아요. 감사관들이 직접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서류나 확인하고 갈 텐데요 뭐. 또 3만 원 짜리 수업인데 힘들일 일이 뭐 있어요?”

  그러면서 신 선생은 휴게실 안을 둘러 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나직이 말했다.

  “지난 번에 제일 출판사 총판 김 실장이 왔었거든요. 올해 한 권 좀 부탁하더라구요. 선생님한테는 안 왔어요?”

  “왔었어. 자네와 나와 함께 셋이서 술 한 잔 하고 싶다는군.”

하면서 구 선생도 소리를 낮추며 씩 웃어 보였다. 신 선생도 씩 웃으면서,

  “그거 좋죠. 이번엔 괜찮은 데 좀 간답니까?”

  “모르지. 가자면 안 가겠어?”

  신 선생은 기대해 보자고 하면서, 자신의 작전대로 귀를 확보하기 위해 바둑판의 3․3으로 가일수했다. 계획대로 대충 귀를 안정시켜 두고 나중에 더 큰 집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자는 것이었다. 괜히 쓸데없이 얼마 안 되는 집으로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상위권 애들 특별 보충 있다며? 강의료가 꽤 크다는 소문이던데”

  “전 잘 모르겠어요.”

  “자네같은 사람이 모르긴 뭘 몰라. 이번에 강의료 나오거든 한 번 쏴.”

  “가 봐야 알죠.”

  신 선생은 이렇게 얼버무렸다. 깊게 얘기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계산이었다. 남 열심히 먹고 있는데 개미떼가 냄새를 맡고 달려들면 좋을 게 없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 마리뿐이라면 거 얼마 안 되지만 여러 마리가 달려들면 자기 몫에서 떼 줘야 하는 것이 많아 출혈이 있게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신 선생은 한편으로 모든 것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지난 주 토요일 학년부장에게서 이번 2학기 때는 상위권 애들 특별 보충반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특별반이니만큼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좀더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 이미 신 선생의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섰다. 8반 최 선생은 나이가 많아 애들이 기피하고 있다. 나는 젊은데다가 몇몇 출판사 학습지나 문제집에 문제도 출제하고 있다는 것을 애들이 잘 알고 있던 터라 애들 사이에는 잘 가르친다는 평판이 나 있다. 그러니 1학년 담임 중에 그 수업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뭐 이런 연역논리였다. 이번에 상위권 애들에게 평판이 좋다면 다른 애들의 불만 섞인 평가야 우습게 누를 수 있다는 계산까지도 이미 해 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작년에 본 대수능 문제와 모의 고사 문제를 유형별로 나눠 정리해 두고 있었다.

  “자, 이제 지방 방송 좀 삼가 주세요. 수 헷갈려요.”

  이렇게 말하고는 신 선생은 드디어 자신의 정력을 중앙 쪽으로 쏟기 시작했다. 좀 더 큰 집을 확보하기 위한 자신의 작전을 은밀하게 구사하고 있었다. 구 선생은 신 선생이 뭔가 수를 쓴다고 눈치를 챘으나 이미 그때는 신 선생이 중앙을 확보하기 위한 세를 구축하고 난 다음이었다. 

<다음에 계속>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