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선생은 한창 아이들 거주지 통계를 내고 있었다. 신림동 24명, 신대방동 10명, 사당동 5명……. 신 선생은 숫자가 무척 좋았다. 특히 표를 만들어 한 칸 한 칸 통계 수치를 채워 나가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가로로, 세로로,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동안에는 이 세상을 다 안 것 같았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신 선생님, 전화 왔어요.”
교무실 사무 보조원으로 일하는 강 양이 신 선생의 계산기 위로 전화를 내밀면서 말했다.
‘엉!’ 하는 소리와 함께 신 선생은 고개를 들었다. 강 양은 미소 띤 얼굴로 신 선생에게 다시 한 번 전화기를 들어 보였다. 그런 강 양을 신 선생은 표정 하나 없는 얼굴을 들어 보였을 뿐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방해 받았기 때문이었다. 강 양도 멋쩍은지 이내 웃음을 거두어 들였다. 신 선생은 전화기를 건네 받았지만 이내 눈길은 통계 수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 하세요. 저에요, 김정임이요.”
양호 선생인 김 정임 선생은 학교에서 유일한 여선생이었다. 학교에서는 그녀의 목소리를 맑은 샘물과도 같다고들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 신 선생은 그녀의 목소리를 PH 8.5의 약알카리성 정도 된다고 했다.
“아, 예.”
“뭐 하세요? 시간 있으시면 좀 얘기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
“무슨 얘긴데요?”
신 선생은 여전히 통계 수치에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그리고 암산으로 계산한 것이 틀린 것을 깨닫고 전화기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지우개로 열심히 지운 다음 새로 숫자를 채워 넣었다.
“선생님 반 학생에 관한 거에요.”
“누군데요?”
“선생님 반에 이 기진이라고 있죠?”
“예?”
“표정이 어둡고, 이마 왼쪽에 점이 있는 학생이요.”
“……”
“오늘 아마 결석했을 텐데요.”
신 선생은 ‘결석’이라는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저절로 눈살이 찌뿌려졌다.
“아! 29번이요. 있죠. 오늘까지 일주일째 결석입니다. 그런데요?”
그 놈은 며칠째 신 선생을 고생시키고 있었다. 집에서는 가출했다고 했다. 그 놈은 수시로 결석과 지각, 조퇴를 일삼던 놈이다. 그 놈 때문에 ‘100% 출석 학급’의 명예를 1학기 때 일찌감치 놓쳐 버리고 말았다. 집에다가는 빨리 그 애를 찾아 학교로 데려 오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출석일수 미달로 문제가 꼬인다고 했다.
“그 학생에 관한 건데요. 시간 있으세요?”
지금은 싫었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것도 문제아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학생들의 거주지 통계를 끝내고 난 다음에는 구 선생과 바둑을 두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한 수라도 더 두기 위해 머뭇거리기 일쑤고, 하루는 아예 수업을 잊은 채 바둑을 두다가 교감에게 한 소리 들은 적도 있을 정도로 바둑을 좋아하는 신 선생이었다. 어제는 아깝게도 한 집 반을 졌다.
“지금 없구요. 이따가 한 시간 후에는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때 보자는 김 선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 선생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계산기를 집어들었다. 29번의 얘기는 곧바로 잊어 버렸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며 깊이 새겨두지 말자는 것이 신 선생의 신조였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그의 자랑이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 칸에 수치를 집어넣으면 작업이 다 끝나게 된다. 계산기 키를 누를 때 톡톡하는 소리는 신 선생에게는 감미로운 멜로디였다.
‘어서 엑셀을 배워야지. 그러면 좀더 간단히 계산 처리를 할 수 있을 거야.’
신 선생은 볼펜으로 통계표의 마지막 칸을 채우며 뇌까렸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