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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얼마 전 유럽 5개국을 단체여행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수십, 수백 명의 한국인 관광객 물결과 마주치면서 한국인 천하가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국이 가난한 전쟁·고아의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급부상한 징표이며 한국인들의 헤픈 씀씀이 또한 국부를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외국에서 드러나는 화려한 한국인들과는 다른, 국내의 가난한 서민층과 생활고로 인한 집단자살자, 결식어린이 등을 떠올리면서, 이야말로 양극화의 극명한 실상이요, 풍요 속의 빈곤임을 절감하였다.
(나) 양극화 문제는 요즘 나타난 갑작스런 현상은 아니다. 한강의 기적을 노래하던 고도성장 시대에도 빈부격차는 있었다. 최근 일각에서 양극화라는 말을 자주 하니 그런 이름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부유층과 이윤이 많은 기업의 조세 부담을 좀 늘리면 어떠냐는 주장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요란하다.
(다) 빈부격차 해소에는 성장정책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오늘의 극심한 격차는 지난 30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성장과 시장만능주의 신화에 빠져 분배를 도외시한 필연적 결과다. 분배를 말하면 아직은 나눌 열매가 없다며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는 돼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높은 절벽의 폭포를 거꾸로 올라가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복지제도 역시 단계적으로 능력에 걸맞게 시책을 도입해야 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이른 오늘에는 상당한 정도의 사회안전망이 이미 구축되었어야 마땅하다.
(라) 복지국가 선발주자 스웨덴은 국민총생산(GNP)의 개념조차 없던 1930년대에 모든 국민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려는 ‘국민의 가정(folkhem)’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국가 핵심정책으로 세우고 노력한 끝에 60년대에 복지사회의 기본 틀을 완성하였다. 당시 스웨덴은 개인의 부 축적과 행복 추구를 어느 정도 제한하면서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을 꾀했다. 어찌 보면 6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군사독재 정권의 개발 논리가 이뤄지던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런데 우리와 확연히 다른 것이, 경제발전이 이뤄지는 즉시 그 혜택을 국민 개개인에게 균등하게 배분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처럼 특정 계층만 경제발전의 혜택을 누린 것이 아니라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이뤄졌고, 그 분배는 국가 구성원 전부에게 고루 돌아갔다는 것이다.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스웨덴 정부가 택한 것은 ‘불평등한 세금’ 정책이었다. 즉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이었다. 스웨덴의 최고 부자인 에릭손 회장은 소득의 90%를 세금을 내고 있을 정도였다.
(마) 복지비용을 위해 세율을 좀더 올린다고 부자의 재산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도, 더 못살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억만장자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가 부자들이 가난해지고 싶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던가?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성장만으로는 선진사회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누구나가 원하는 것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변광수<부자 나라에 양극화라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