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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페론은 가난한 사생아로 온갖 사회적 멸시 속에서도 '국모'로 등극해,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획기적 개선으로 1940년대 아르헨티나를 열광시켰던 신화적 인물이다. 내년이면 에비타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지만, 아직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묘지에는 꽃다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에비타의 복지정책에 대한 환상이 아직도 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들의 시각만으로는 헤아리기 힘든 정서가 아직도 살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금 에비타를 위해 결코 울 수 없을 것 같다.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70년대는 물론 80년대에도 연 6천%의 인플레이션과 외채 위기를 겪었으며, 최근까지도 아슬아슬한 벼랑 위를 맴돌아 왔던 것이다. 한때 풍부한 자원과 광활한 국토로 세계 7대 경제대국에 속했던 아르헨티나가 지금은 위기를 상징하는 나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왜 이러한 혼미가 아르헨티나에만 반복되는 것일까. 위기 때마다 국제적인 전문가들의 처방도 그렇게 많았는데, 몇년이 지나면 또 다시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정치적 불안정, 과다한 외채의존과 구조조정의 실패 등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아르헨티나의 비극의 배경에는 에비타의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국민들의 정서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선진국보다 더 많은 휴가를 즐기고, 일하지 않아도 수준 높은 연금과 복지,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제도로 전국민을 편안하게 만들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아리헨티나는 인기에 영합했던 정책의 반복으로 구조조정은 실패했고, 과다한 복지지출로 재정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여왔다. 실제로 의료비용과 대학교육비까지 무료이며, 선진국보다 높은 실직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에비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복지정책의 근간을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관성처럼 뿌리깊게 박혀 있는 국민의 정서를 어느 정권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아르헨티나여, 나를 멀리 하지 말라"는 호소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재정적자는 통화남발과 외채로 메워지고, 인플레이션은 적자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거듭되는 악순환으로 반세기 이상을 위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도 외채규모가 1천5백50억달러로 국내총생산의 46%에 육박하고, 연간 재정의 세배에 달한다. 기업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사회보장과 근로자 복지제도로 오히려 기업의 경쟁력은 날로 저하되고 있을 뿐이다.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공기업의 민영화도 실패로 끝이 났다. 위기 때마다 자본의 해외유출도 심각하다. 과연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물론 형평을 개선하고 근로자의 후생을 높이기 위한 복지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생산성을 무시한 과다한 요구는 결국 경쟁력을 저하시켜 고용마저 위협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될수록 인기에 영합하는 복지와 후생정책의 등장도 경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개혁과 구조조정은 오히려 단기적인 저항을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경제적 선택이 인기와 표에 좌우되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때로는 국민정서를 뛰어넘는 과감한 정책의지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다행히 아직은 외환위기를 잘 극복해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국민정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가. 행여 우리에게도 에비타의 환상이 어디엔가 살아있다면, 위기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정갑영,<누가 에비타를 위해 우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