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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국제관계도 강대국들의 ‘협조’를 통해 갈등을 관리해 나가는 경향이 강하다. 강대국들이 그만큼 외교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신국제질서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1815년 전승국들이 프랑스를 빈체제에 끌어들인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오늘의 국제질서를 강대국들이 협조한다는 뜻에서 ‘화해와 협조의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이 아닌 우리로서는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항이 많다.
우선 ‘강대국의 협조체제’는 그야말로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체제다. 19세기 유럽협조체제도 자세히 보면 약소국들의 운명을 강대국들이 결정하고 약소국들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냉전체제 아래에서는 그나마 약소국들에는 일종의 선택이 있었다. 동서 진영 중에 어느 한편을 선택하든가 비동맹을 선언함으로써 그 내부에서는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협조체제 아래에서는 기존질서에 반대하는 세력은 테러를 통한 혁명 아니면 기존질서에 종속돼야 하는 양자택일의 골목길에 서 있다.
그리고 19세기의 유럽협조체제는 1백년 동안 유럽의 평화를 유지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강대국간의 평화를 뜻하며 약소국들은 계속 혼란에 휘말렸다. 실제로 유럽의 협조체제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체제가 아니라 전쟁을 관리하고 조정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국제질서도 마찬가지다. 강대국들의 관계가 개선됐고 약소국들간의 분쟁도 해소됐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강대국들의 협조체제는 일종의 과두정체적 성격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주도적 역할을 하는 강대국이 있다. 19세기에는 영국이, 21세기에는 미국이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데, 더욱이 미국은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어떤 낭만적인 환상이나 강대국에 대한 원망으로 우리의 현실인식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질서에 아무런 능동적 노력도 없이 무조건 반발과 종속의 극단으로만 치닫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제한된 가능성을 위해 강대국들을 내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강대국들도 세계질서를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보편타당한 원칙과 절차가 필요한 만큼 약소국들의 설득력 있는 외교를 위한 공간은 있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공간을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다.
- 김경원, <신세계질서 대응법>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