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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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에 대하여 흔히 하는 얘기 중 하나는 ‘당파싸움’에 관한 것이다. 조선조는 외적의 침입 앞에서도 서로 당파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서로를 죽이면서 피흘려 싸운 천박하고 잔인한 정치체제를 양산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랬는가? 당파란 무엇인가? 사실 조선조에서는 당파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다. 그 대신 ‘붕당(朋黨)’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런데 붕당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주자 성리학을 집대성시킨 주자는 붕당정치를 이상적인 정치의 형태로 여겼다. 왕의 일인 통치체제를 배격하고 슬기롭고 덕성을 갖춘 신하들이 왕을 보좌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이상을 생각했던 주자 성리학자들은 신하들이 자신의 학문과 사상, 이념에 따라서 붕당을 형성하고 서로를 견제하면서 균형을 잡는 정치를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실재로 조선의 붕당들은 이황, 이이, 조식, 유성룡, 송시열, 정약용 등 기라성 같은 학자 겸 정치인들을 배출하였고 그들의 학통과 사상을 바탕으로 형성되기도 하였다. 물론 사화도 있었고 정치적 패배가 곧 죽음을 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있어 온 정치의 부산물이며 더욱이 그 당시 외국의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조선조의 정치가 더 잔인하였다는 말은 결코 할 수 없다.

  조선조에 대한 또 다른 오해의 하나는 조선조의 정치 체제가 권위주의 또는 독재체제의 원형을 제공한 전제군주제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주자 성리학은 결코 절대군주제를 옹호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주장 성리학의 핵심은 왕도정치이면서도 이상적인 정치는 결코 왕 한 사람만 갖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아무리 어질고 현명한 왕이라 하더라도 그는 그에 못지 않고 능력 있고 덕을 갖춘 신하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왕의 전제적인 성향을 제어하기 위하여 다양한 제도들을 맞들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경연(經延)제도와 언관(言官)제도, 그리고 사관(史官)제도였다.

  얼마 전 우리는 53번째 광복절을 맞이 하였다. 8․15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제 자리를 찾은 날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문화민족이 잔악한 외세의 총칼에 유린당하던 굴욕적인 식민지 생활을 청산하게 된 날이다. 그 후 우리는 수많은 좌절을 맛보면서도 역사의 격랑을 헤치며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에 성공하였다. 왜곡되고 굴절된 역사의 물줄기를 어느 정도 바로 잡았고 따라서 다가오는 21세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낙관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완전한 광복을 맞지 못하고 있다. 조국이 남북으로 갈려 있고 북한의 동포들이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시대착오적인 체제하에서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는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우리가 민족의 해방을 미완성으로 간주하는 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우리가 우리 민족의 정치 전통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도 왜곡되어 있고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특히 조선조의 역사가 그렇다. 물론 모든 것을 미화시켜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최소한 조선조를 세운 사람들이 추구하던 이상 사회의 모습이 무엇이었고 또 그것을 건설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를 세우고 정책을 펴 나갔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이상에 얼마나 근접하였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은 과거는 물론 196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살던 동네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가족제도와 삼강 오륜등이 어떠한 인식론과 존재론을 바탕으로 형성되고 전파된 것인지를 알아보는 길이기도 하다.

  이처럼 과거의 정치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때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상의 본류를 알고 과거 역사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알 때에 우리는 비로소 자유민주주의와 산업자본주의, 자유 시장 경제가 우리에게 무엇이고 세계화의 무한 경쟁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일을 어떠한 사상적 바탕 위에서 추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한국정치담론의 어제와 오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확실한 자아관과 비전을 수립하는 길이다.

-함재봉, <한국 정치 담론의 어제와 오늘>에서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