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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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경제학에서 상정하는 인간형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이익 계산기’, 즉 경제인(Homo Economicus)이다. 이 인간은 인정, 동정심, 의리, 질투, 참여, 소외, 지배와 피지배 같은 문제에 대한 의식이 없다. 그리고 희로애락 같은 기초적 감정조차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인(動因)인 ‘이기심’을 중심으로 인간형을 간단하게 가정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학이 이러한 인간형을 상정하는 것은 분석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그에 근거한 연역으로 명제를 도출해 현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 결과 경제학은 짜임새 있고 내구성 있는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어, 다른 사회과학보다 훨씬 더 분석의 정밀성을 갖게 되었고, 지식의 체계적 축적이 가능하게 하였으며, 완전하지는 않지만 미래 예측력을 갖게 되었다. 이제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여왕’의 위치를 차지하게 됐고, 경제학자는 ‘현대의 예언자’라고 불러도 좋은 존재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상의 수월함에도 불구하고 ‘인간형을 그런 식으로 가정해도 좋은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남는다. 사람간의 사랑과 미움, 지배․피지배, 희로애락을 모두 고려의 대상에서 빼버리고 인간을 ‘이익 계산기’로만 보는 경제학이 도대체 ‘철학’이 있는 학문인가? 아니, 그에 앞서 경제학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인가? 아닌게 아니라 수식만 잔뜩 늘어놓은 현대 경제학 문헌을 보다 보면 그 어느 쪽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경제학이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 현대 경제학의 세계에서 그 관계는 매우 특이하게 나타날 뿐이다. 현대 경제학의 주된 세계인 시장경제에서 이익 계산기인 개인끼리 상호 관계를 맺는 방식은 서로 다른 개인을 의식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지배하고 반항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하게 같은 물건이라면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싸게 파는 사람에게서 사고, 파는 사람은 누구나 비싸게 주는 사람에게 파는 것으로 서로의 관계(혹은 무관계)가 성립한다. 각자는 그렇게 해서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에 자신의 필요와 공급 능력을 비교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각 개인의 욕구와 수요, 생산 및 공급능력은 얼마든지 달라도 좋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돼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기적인 개인들이 시장에 참여해 자신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무의식중에 서로 관계를 맺은 결과 사회적으로 적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이해의 조화(Harmony of Interest)’가 바로 현대 경제학의 바탕에 놓여 있는 기본 ‘철학’이다.

  물론 이해가 조화되지 않는 영역도 있다. 개인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와 모두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현대 경제학은 이처럼 개인간의 이해가 조화되지 않는 분야도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경제이론의 핵심 작업이 바로 개인간에 이해가 조화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가려내는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해가 조화되건 되지 않건, 인간형에 대한 가정은 동일하다.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인간을 가정하기 때문에 개인간의 이해가 조화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경제학은 이해가 조화되지 않을 경우 그 사회적 해결책을 도덕적 설득, 공동체 의식의 함양, 인성 교육, 자부심 앙양 등을 통해서 찾지 않고 전체의 이익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이 되도록 유인체계를 만드는 데서 찾는다.

  물론 경제학자도 인간이 이익 계산기가 아니라 온갖 감정과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을 모두 포함해 설정한 인간형으로부터 출발해서 연역적 이론을 구성할 수 있다면 대다수 경제학자는 매우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그로부터 출발해 예측 가능한 이론을 만들거나 실용성 있는 사회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민 <경제학의 음울한 인간형과 이해의 조화 원칙>에서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