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뛰어난 서양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의자를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의자는 가구 중에서 조형적인 표현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의자는 머리, 등, 엉덩이 등의 받침대, 팔걸이, 다리로 구성돼 있다. 다른 가구들과 견주어볼 때 의자는 그 구조가 대단히 입체적인 것이다. 재료도 어떤 가구보다 다양하다. 나무, 금속, 섬유, 플라스틱, 여기에 돌까지.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다양한 재료가 한꺼번에 쓰인 가구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특별한 의자를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관한 한 건축가들도 뒤지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의자에 압축해서 표현하길 좋아한다. 건축가들은 건축과 함께 그 건물의 내부에 쓰이는 물건들도 통일된 스타일로 디자인하고 싶어 하는데, 그 대표적인 물건이 바로 의자인 것이다. 근대 건축을 탄생시킨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나는 가구와 설비들이 건물과 분리되거나 따로 놓여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건물 그 자체의 작은 부분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 건축의 아이콘 같은 의자를 이 세상에 남겼던 것이다. 서구의 가구 디자인 역사를 볼 때, 의자는 분명 그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좌식 생활을 한 한국인에게 의자는 그렇게 대수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우리의 생활양식이 서구화돼 식탁과 책상이 보편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자는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의자를 단독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사실만 봐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의자는 늘 식탁이나 책상에 딸려오는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또 우리 기억 속의 의자들이란 학교의 나무 책상, 사무실의 철제 의자, 구멍가게 앞의 널빤지 의자, 식당에서 막 쓰는 동그란 의자 등으로 고급스럽거나 애지중지하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돈이 있어도 의자를 고르는 안목은 부족해 구조나 기능, 디자인보다 그저 가죽 같은 비싼 재료로 껍데기를 씌운 의자를 선호했다. 1990년대 이후 명품 열풍이 불었을 때 의자에 대한 욕망도 일어났을 법도 한데, 유독 의자에만은 소극적이었다. 이는 의류나 가방, 구두, 시계, 자동차와 달리 집 안에 있는 가구나 의자는 남들에게 자랑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었다.

  최근 고급 인테리어 정보가 꾸준히 보급되면서 거장들의 의자도 점차 한국에 소개되고 있다. 특히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가 집안 인테리어를 일관된 스타일로 꾸미는 데 눈뜨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모던한 스타일로 집안을 장식함에 따라 이들 의자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아가 부유층도 이제는 원목이나 앤티크 가구에만 열광하지 않고 산뜻하고 세련된 모던 가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 또 고급 식당에도 덴마크의 거장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개미 의자 같은 것이 들어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의자가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이런 세계적인 모던 의자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건축설계사무소, 디자인 스튜디오, 사진 스튜디오 등으로 한정돼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 실정에서 우리 나라 최초로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는 의자 관련 전시회는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대중들의 의자에 대한 관심을 더욱더 끌어 모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이 쌓이고 쌓여 머지않아 우리 나라에서도 패션이나 시계, 자동차에 열광하듯 의자가 소유하고픈 주요 욕망의 대상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김신 <의자, 그 의자에 앉고 싶다>에서

Posted by pop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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