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최근 세계적 현대무용가 혹은 단체를 꼽으면 재미있게도 대부분이 유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작년에 방한한 빔 반데키부스(벨기에),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모나코), 피나 바우쉬(독일), 제롬 벨(프랑스) 등도 모두 유럽인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상당히 오래된 것이어서, 유럽무용가들의 독주를 세계 무용계에서는 그다지 특별한 현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분명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현대무용’ 하면 미국이 메카였으며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유럽인들조차 현대무용을 공부하거나 활동하려면 미국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어느새 초라한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995년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조짐을 간파하고 그 심각성을 경고했으나 미국 사회는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10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 현대무용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의 현대무용이 왜 이렇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원인은 복합적이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재정지원 축소로 대표 되는 정치적 신보수주의이다.

  실험성이 강하고 기존 예술의 형식과 전통을 거부하는 성향이 강한 현대무용은 진보적 지식인과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대표적 장르다.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는 현대무용이 꽃필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이 된다. 이는 미국 현대무용의 중흥기였던 1960~70년대가 반전운동, 히피문화와 같이 젊고 저항정신이 강한 문화와 정서로 대변되는 시대였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된다. 나날이 보수화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오늘날 왜 현대무용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유럽에서 현대무용이 단연 강세인 것은 상대적으로 좌파의 영향력이 강한 탓이다. 현대무용가들의 실험을 독려하고 그들의 전위적인 작품을 적극 옹호하는 유럽의 문화적 풍토가 민족과 국적을 초월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을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고 화두를 생산하며 논쟁의 한복판으로 현대무용을 끌어들이는 사람들 역시 좌파적 성향이 강한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열린 시각으로 관용과 포용의 자세로 창작 작품을 바라본다. 기존의 예술적 형식을 끊임없이 전복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살아있는 사고가 오늘날 유럽 현대무용 발전의 모태가 되었다.

  무용은 따분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다르다.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역동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이 무용, 특히 현대무용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당대성’과 ‘진보성’이다. 예술이 처한 현실에 철저히 뿌리박되,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양하고 혁신적인 현대무용이 그립다면, 그리고 우리는 왜 ‘얀 파브르’의 파격적인 현대 무용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 농사가 중요하다지만.

-박성혜 <끝없는 도전…유럽춤은 살아 움직인다>에서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