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견해는 자연미가 인간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실재해 있다는 생각에 근 기본이 있다. 자연물이 인간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또 그것이 물리적인 법칙을 따라서 움직이며 변화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연미가 독립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다. 물리적인 자연은 우리의 감각을 떠나서 존재한다. 그러나 사물이 지니고 있는 미는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이 지니는 미는 그 사물의 무게라든가 크기라든가 운동과 같은 성질은 결코 아니다. 색이라든가 냄새라든가 맛과 같은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인 성질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어떤 사물이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성질이다. 이러한 성질은 그 어느 의미로는 객관적이다. 그러나 미는 훨씬 주관적이다.
다음에 예술은 자연의 모방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예술이 자연을 모방한다고 할 때 자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산천초목(山川草木)인가 그렇지 않으면 화조월석(花鳥月石)인가? 회화나 소설은 산천초목이나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것, 즉 집이라든가 다리라든가 기구 등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고 할 때 자연풍경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외적인 자연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내적 자연까지 포함시킨다면 예술은 결코 외적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예술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 소재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또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자연을 변경하지 않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뜻과 둘째로 자연 속의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자연의 모방이란 문자 그대로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묘사에는 변경이 따른다. 그것은 어떤 매개물을 통해서 예술가가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묘사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힘이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묘사한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것과 그것을 아름답게 그린다는 것과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아름답지 못한 것도 아름답게 그릴 수가 있고, 아름다운 것도 추하게 그려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결코 있는 그대로의 외계는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감각기관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마치 거울에 비치듯이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논리는 미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아름다운 것이 우리와 독립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느끼는 인간의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의도 없는 것이다. 미를 창조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한다. 예술가가 자연 가운데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이란 자연에 대한 예술가의 기분이나 느낌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자연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철학개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