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는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인류 구전·무형 유산 걸작’으로 선언했다.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인류 구전·무형 유산 걸작’에 처음으로 선정된 이래 두 번째이다. 그러나 이번 선정의 의미는 자못 각별한 바가 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봉건 왕조의 찬양과 유지에 봉사하던 것인 데 반하여, 판소리는 봉건 체제를 극복하고자 했던 민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조선조 후기 근대로의 이행기에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중세적 이념에 가려져 있던 피지배층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그들의 주장을 솔직하게 대변하는 한편 그들의 희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배 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물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전망을 담아내는 데도 성공함으로써,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판소리에는 상하층 문화가 골고루 담겨 있다. 판소리는 애초에는 피지배계층에 의해 피지배계층의 예술로 출발했으나, 곧 지배계층을 향유층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계층간의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을 수행했다. 판소리를 함께 향유하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서로의 주장과 견해를 조절하고, 상호 합치점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또한 판소리는 개방적이어서 한국의 다양한 전통 예술로부터 필요한 것을 수용하여 종합했다. 그 결과 곧 전라도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민족 예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 민중들에 의해, 민중들의 소망을 담아 탄생한 판소리는 이제 ‘창조적인 인간 천재의 걸작으로서의 뛰어난 가치’를 공인받게 되었다. 그런데 판소리가 ‘인류 구전·무형 유산 걸작’에 선정되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른 우리의 새로운 마음가짐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판소리계에 큰 재정적 지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거나, 판소리도 이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세계로 나가 큰 돈을 곧 벌 수 있을 듯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판소리는 돈벌이가 되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우리답게 해주는 것이기에 소중하다. 우리가 우리다울 때 우리의 존재를 인정 받을 수 있는 원천적 힘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우선은 아무 조건 없이 판소리를 보전해야 한다.
다음으로 할 일은 판소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이다. 판소리를 세계에 소개하고 알리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소개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으며, 이 다양한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번역도 해야 하고, 외국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양식도 개발해야 한다.
판소리가 진정으로 창조적인 인간 천재의 걸작으로서 뛰어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판소리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돌려줄 것이다.
-최동현 <보존노력 속에서 더욱 빛날 판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