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자주 쓰이는 개념이 바로 ‘절대성’이다. ‘다양성’과 ‘모호성’이 존재하는 현대와 달리 과거는 ‘절대성’이라는 아름다운 질서가 존재하던 시대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를 동경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과거의 사라진 절대성을 찾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이러한 열망은 막연하지만 절대에 대한 근원성과 원형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예외가 아니다. 최근 한국 연극의 공연 상황을 살펴보면, 전통연희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하느냐가 중요한 화두임을 알 수 있다.
최근 공연된 연극 ‘시골선비 조남명’을 살펴 보자. 이 연극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삶을 재조명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바로 선비의 삶이다. 연극은 당쟁과 사화의 혼란 속에서 선비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남명(南冥) 조식(曺植)을 통해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하였는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상소(上訴)의 대목이다. 강직한 성품을 상소라는 장면으로 구체화시켜 선비정신을 예각화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直言)하는 당당한 모습,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독백은 죽은 신하들의 집단무(集團舞)와 어우러지면서 극적 장면으로 매우 뛰어나다. 연출자는 과거 조남명의 삶을 밀착하면서 동시에 현대 지식인의 삶을 반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두드러진 공연적 특징은 지금까지 주종을 이루었던 전통연희인 굿,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광대굿놀이 등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조가곡창(時調歌曲唱), 양반춤, 택견 등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사의 전달을 시조가곡창으로 처리한 점은 매우 돋보였다.
그러나 연극에서 전략적으로 사용된 전통적인 요소가 오히려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연극에서 전통적인 소리 방식인 시조가곡창은 ‘느림’이라는 코드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몸의 움직임에 있어서도 ‘느림’이라는 코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느린 양반춤과 빠른 학동들의 택견이 있었지만 따로따로 나눠져 있다는 느낌이다. 전통적인 소리와 몸 움직임 방식을 극적 장치로 사용하고 있지만 단순히 과거의 색다르고 기이한 것을 보여주는 정도로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느림’이나 ‘유장함’이 좀더 강력한 극적 효과나 깊이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방법이 있었어야 했다. 예컨대 전통적인 장단에서 사용하는 ‘밀고․달고․맺고․푸는’ 구조를 좀더 연극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러한 측면은 이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전통연희를 계승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품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오류이기도하다. 이것은 바로 전통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전통이라고 하면 과거의 변하지 않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지속성’과 ‘연속성’의 개념만을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전통을 단순히 고정돼 있는 것으로만 인식하면 매우 곤란하다. 이런 잘못된 생각은 곧바로 전통을 과거적인 것, 복고적인 것으로 규정짓는 우를 범하게 한다. ‘전통’이란 개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초월성’이라는 속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전통적인 방식이 그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밀착돼 있기 때문에 유의미했다면 현대에 수용된 전통은 현대인의 삶과 밀착돼 있어야 한다.
-김현철 <오늘의 남명선생을 찾습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