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와 혼란의 시기이자 희망과 기회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경을 무의미하게 하는 세계화라는 흐름이나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 기술 등의 급속한 발전을 주목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때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는 단연코 ‘지식’이 될 것이다. 인류의 역사상 지식을 소홀히 한 적은 없었을 것이나 최근처럼 지식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된 적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있어 토지, 자본, 원재료 등을 가장 중요시했으나 이제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부가가치의 창출원이 되고 있다.
(나) 이런 변화의 근저에는 많은 나라에서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케 됐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 공급 초과현상이 나타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환경변화가 요구하는 것, 수요자들이 원하는 것을 기민하게 충족시킬 수 있도록 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도 모든 경제사회나 기업의 생존과 번영은 지식을 지닌 근로자의 생산성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식관련 논의는 지식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도 또한 안고 있다.
(다) 지식은 여러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형 지식"과 "규범 형성형 지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로 대표되는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형 지식"은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지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과학기술 외에도 기업들이 중시하는 지식자산도 포함된다. 예컨대 특허권 저작권 디자인권 상표권은 물론, 영업상 비밀이나 영업노하우, 우호적인 고객, 유통경로 등도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을 가능케 하는 지식자산이다. 또한 직원들이 교육과 경험을 통해 손끝에 익히거나 머릿속에 담아놓은 업무수행 능력이나 관련지식도 중요한 지식자산이다. 이에 반해 "규범 형성형 지식"은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와 규범형성에 필요한 지식이다. 즉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왜 법을 지켜야 하는지 등과 같은 도덕윤리적인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역사 문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의 영역에 속한다.
(라)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조선왕조 5백년은 통치기반을 굳히기 위해 인문학을 강조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한 시기로서 보통 사람이 지키기 어려운 규범으로 지나치게 속박했다. 반면 경제개발 제일주의로 치달은 지난 40여년은 부가가치형 지식만을 강조하고 인문학적 지식을 소홀히 해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고 가치관이 무너진 그런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요즘도 지식과 관련한 우리들의 논의를 보면 아직도 부가가치 창출형 지식만을 논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마) 국가는 국가 수준에서 지식기반 경제를 구축하고 기업은 기업 수준에서 지식경영 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개인은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에 생존하고 번영해 나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형 지식만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규범 형성형 지식을 경시하면 사회의 가치관과 도덕이 무너지고 물신주의에 빠지게 된다. 양자를 균형 있게 갖춰야만 올바른 가치관과 새 시대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균형된 사람이 될 수 있다. 너무 한 가지 음식만을 편식하게 되면 몸이 이상 발육하게 된다. 따라서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형 지식과 규범 형성형 지식을 골고루 발전시켜야 한다.기술만 가지고 있고 생각이 바르지 못한 인간을 키워낸다면 우리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올바른 가치관을 지니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인간을 키워내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래야만 비로소 지식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나라, 건강한 경제를 만들고 개개인의 복리를 증진시켜 주는 중요한 자원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윤호 <지식도 균형 이뤄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