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正史)는 ‘정확한 사실의 역사’, ‘체제에 의하여 서술된 역사’로 정의된다. 우리나라 정사로 대표적인 것은 역대 제왕의 사적(事蹟)을 기록한 <실록(實錄)>이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나 역사 서술 체제에 맞추어 개인이 쓴 여러 사서 등도 정사에 포함된다. 이것들은 자신이 견문한 내용을 일정한 서술 체제에 맞추어 기록하기 때문에 사료적 신빙성이 높다. 그러나 실록의 예를 보면 사관(史官) 자신이 작성한 사초(史草)에 서명을 해야 하는 사관실명제 때문에 왕실과 지배층에게 불리한 내용은 알아서 애매하게 처리하거나 삭제해 버리기도 하였다. 정사 또한 위정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야사(野史)는 야담(野談)이라고도 하며 한 개인이 자기의 주견대로 적은 역사 이야기, 즉 사화(史話)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민간에서 사사로이 편찬한 역사’라 정의하는데, 상고사 이야기가 실린 <환단고기(桓檀古記)>같은 고기류(古記類)에서부터 <삼국유사(三國遺事)>, <용재총화(黛齋叢話)>,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에 이르기까지 한국 야사의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다. 야사나 야담은 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된 까닭에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간에 내려오는 항담(巷談)과 필부(匹夫)들 사이에 떠도는 가어(街語)까지 담고 있어서, 야사는 때로는 정서가 넘치는 살아있는 역사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역사 이야기들은 역사에 흥미를 갖게 하고 교훈을 얻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야사는 역사 서술에서 필요한 체제와 서술방식 그리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수사(修史) 태도 등이 결여될 수가 있다. 특히 정치와 관련된 야사의 경우 파당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현재도 정치권 등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활동들은 국회 회의록이나, 각 정치 단체의 문서로 남기도 하고 언론 보도로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이 근현대사를 기술할 때 그것들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국회회의록 같은 것은 회의 속기록(速記錄) 등을 포함하고 있어 활동을 있는 그대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언론 보도나 각 정치권의 문서를 가지고 그 진실을 정리할 때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은 바로 문서 자료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언론 보도 내용은 각 언론사가 편집 방침에 따라 사건이나 사안을 재구성한 것이고, 각 정치권의 문서 내용들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요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근현대사를 기술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정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야사를 보충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상을 복원하는 기본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사를 인용하든 야사를 인용하든 사료(史料)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고증이 있어야만 올바른 과거 역사상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송호정, <동양의 시각에서 본 正史와 野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