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2012년 3월 2일은 제가 교직에 첫발을 들인지 20년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동안의 제 수업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번에 ‘독독해(獨讀解) 언․사․모’라는 교재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이용했던 자료를 정리하다가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2001년 4월 15일에 만들어진 한글 파일이었습니다. 감개무량하여 눈을 감고 옛날로 잠시 돌아가 보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수 있는 수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집중력이 떨어진다느니, 공부할 마음이 없다느니, 머리가 나쁘다느니 하며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보기도 했지만, 그런 학생들을 위한 제대로 된 교재 하나 갖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 또한 저를 괴롭혔습니다. 더욱이 당시 유치원을 다니고 있던 제 아이들이 곧 이런 학생들의 위치에 올 것인데 난 그때 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사고력 증진을 위한 교재를 한 번 만들어 보자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교재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바를 구현하기에는 제 능력이 모자랐습니다. 마음만 앞섰을 뿐 제가 갖고 있었던 자료도 부족했고 그것을 조직하는 데 국어 교육 10년이라는 경력도 턱없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한 때는 교육 안팎의 상황이 교재나 한가롭게 만들 수만은 없게 흘러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집회에 나가 구호도 외쳐야 했고, 때로는 학교 일에 나서서 현안을 해결해야 했기에 교재 만들 시간을 낸다는 것이 사치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한 때는 돈이 아쉬워 당장 돈이 손에 쥐어지는 교재 집필에 매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커 가면서 들어가는 돈도 만만찮았고, 어머니의 암치료를 위한 비용도 급했기에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교재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자료가 축적되고, 교육청 모의고사 출제나 교재 집필로 문항 개발 능력도 좀 늘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도 마흔이 넘어 버렸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런저런 핑계만을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재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감과 욕심이 지나치게 넘치다 보니 한참 쓰고 들여다 보면 제가 바라는 바와는 거리가 먼 이상한 교재가 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게 아닌가 벼’하며 뒤엎은 것도 수 차례였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이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런 걸까요? 버릴 것은 버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랬더니 그 동안 제 마음 속을 옭아맸던 아우성이 가라앉고 고요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머릿속은 맑아지면서 교재 집필도 자유롭게 되어 그 동안 제가 만들고 싶어 했던 교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1년. 마침내 제가 10여 년 동안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교재의 완성을 보았습니다.

 

제 수업의 핵심은 논리적 사고력에 의한 텍스트 분석입니다. 저는 요즘 학생들의 문제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우리 문장에 대한 분석 능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독해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에 길들여진 많은 학생들은 재미없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외우기 싫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단계적으로 꾸준히 연습할 수 있도록 하는 교재를 만들고자 했는데, 바로 이 책이 그것입니다.

 

이 교재는 크게 1,2,3부로 된 본책과 <사고력으로 문제 풀기> 요령을 담은 별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본책을 통해 학생들에게 우리말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연습시키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별책을 이용하여 사고력을 통해 교육청 기출 문제를 풀이하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지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아이들은 제 책을 보고 ‘멋없고 재미없는’ 책이라며 팔리지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책에서 이끄는 대로 나가다 보면 독해 능력 향상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더군요.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교사는 재미로 평가되어서도 안 되고, 돈을 얼마 버느냐로 평가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며, 오직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독해(獨讀解) 언․사․모’'혼자 독해해서 언어 능력을 늘리고, 그것을 통해 사고력을 키워 모든 영역을 잘하자'는 뜻입니다. 저는 '언어가 생각하는 힘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생각하는 힘이 있어야 이해력과 추리력, 비판력 등이 생깁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 자식들을 이러한 신념으로 키워 왔습니다. 그 결과는 제 생각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말의 구조에 관한 습득이야말로 문학, 수학, 과학, 사회, 예술에 대한 이해의 지름길입니다. 그 정신을 구현한 책이 바로 ‘독독해(獨讀解) 언․사․모’ 입니다.
(이 책의 기본 정신은 다음 포스트 http://popari.sisain.co.kr/363
에 자세히 설명해 두었습니다)

막상 책을 내놓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벌써부터 고쳐야 할 부분이 눈에 보이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제가 죽을 때까지 이 책의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책을 함부로 내놓은 이가 짊어져야 할 멍에이겠지요. 여러분들의 따끔한 지적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책을 함부로 내놓은 죄의식으로부터 제가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1년 12월

성보고등학교 교사 신 철 수

 

※지면을 통해 교육청 모의고사와 대수능 문제 출제 교사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교재를 만들면서 그 분들의 정제된 지문과 주옥같은 문제들이 없었다면 이 교재는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