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을 가리켜 흔히 ‘하이픈(-)의 철학’이라고 한다. 이것은 사회철학(Social-Philosopie), 과학철학(Wissenschaft-Philosopie), 법철학(Rechts-Philosopie) 등에서와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이픈(-)으로 연결되어서만 나타나고 있는 현대철학의 특징을 일컬어 하는 말이겠다. 이렇게 보면 철학이 이미 현실의 제분야들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이론과, 현실을 개조하여 재구성하려고 하는 실천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현실을 따로 떼어서, 철학과 현실을 새삼스럽게 논한다는 것은 쑥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철학과 현실을 이 시대의 철학적 과제로 내세울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철학이 현실과 많이 유리되었고, 현실에 무감각하여, 현실도피적이기까지 하다는 반성과 참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철학은 주로 철학의 역사와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학문이 70% 이상이 자기 자신의 과거의 역사에 관한 것만 다루고 있다면, 이런 학문은 박물관에나 들어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학에 관한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법론만 하다가 막상 철학을 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일생동안 획 긋는 연습만 하다가, 글자 한 자 제대로 못쓰고 끝내는 것과 다름이 없으리라. 철학이 당면한 현실의 문제에도 과감히 뛰어드는 것은, 철학의 역사를 다 알지 못하고, 철학의 세련된 방법을 다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도 의미가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철학이 현실에 뛰어 현실 문제를 다룬다고 할 때에, 현실의 모든 문제를 다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현실의 상당한 부분은 이미 정치학이나 법학이 다루고 있으며, 삶의 여러 가지 현실 문제들인 물가 문제나 실업 문제, 보험 제도의 문제들은 경제학이나 노동사회학이나 복지이론들이 각기 나누어서 다루고 있다. 도대체 철학이 또 나서서 현실 문제를 다룬다고 할 때에, 이런 문제들이 아닌 어떤 현실을 다루며, 또 어떤 방법으로 다룬다는 말인가?
플라톤은 빵굽는 사람이나 요리사, 양복짓는 사람, 성을 쌓는 사람, 세금받는 사람, 군인들이 모두 필요하지만, 이들이 현실의 문제를 돌보지 않고 마구 개별적 이익의 입장에서만 일하게 될 때, 현실에는 위기가 오며, 바로 이 위기의 현실을 감지할 수 있는 철인(哲人)이 나서야만 한다고 했다. 독일의 철학자 뤼벤는 ‘아직도 철학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대해 대답하면서, 오늘의 철학은 특히 현실을 파악하고 창조해 가는 데 있어서 방향감각의 위기가 생겼을 때, 이를 반성하고 해결하는 일을 그 사명과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철학을 방향성(方向性)의 위기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현실의 파악이나 실천의 과정에서, 모든 분야의 전문인들이 무사히 잘 해결해 갈 때는 특별히 철학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고장이 나고 문제가 생기고 현실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방향감각을 바로 잡기 위해 철학이 필요하다.
방향 감각을 바로 잡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비판과 반성이 필요하다. 철학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비판(批判:Kritik)도 위기(危機 : Krisis)라는 말에서 나왔으며, 위기의 현실을 바르게 헤쳐 나가는 것이 곧 비판이었다. 칸트는 한 사회의 보편적 가치 기준으로서 이성이 무시당하고 타당성을 잃게 되는 위기에 빠졌을 때, 이 위기를 바로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비판철학을 감행했으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 양식과 발전의 구조가 그 사회를 파멸시킬 수밖에 없는 위기가 이르렀음을 직감했기에 정치 경제학 비판과 역사 발전의 철학을 내놓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의 철학은 비판과 반성을 통해 우리 현실의 위기를 바로 파악하고 방향감각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삼열 <위기의 현실과 철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