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미국의 흑인은 자신의 피부가 검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을 ‘Negro[검둥이]’라고 부르면 격분한다. ‘검둥이’라는 말에는 존중의 의미는 전혀 없고 멸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검둥이라는 말에는 노예제의 악몽이 묻어 있고, 백인 농장주의 피 묻은 채찍에 신음하는 흑인 노예들의 절규가 절어 있다. 그래서 현대 미국 사회에서는 그들을 ‘black[흑인]’ 또는 ‘African American[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 지칭한다.

  신체의 특성상 거의 차이가 없는 집단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일제 강점기 때, 중국인들은 현지로 이주한 한인들을 비하할 때 ‘까오리빵즈’(gaolibangzi, 高麗棒子)라고 불렀다. 그것을 직역하면 '성격이 직선적이고 체격이 큰 고려인'이라는 뜻으로, 꼭 욕설이라고만 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한인들은 그러한 말을 듣는 경우 모욕을 당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당시 집단적 모욕을 당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인들을 비하하여 ‘되놈’이나 ‘호로(胡虜) 쌍놈’이라 하면서 대항했다. 이보다 더 못한 말도 있다. 같은 시기 일본인들은 한인들을 비하할 때 ‘바카야로(ばかやろ;馬鹿夜郞) 죠센진(ちょうせんじん;朝鮮人)’이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말과 사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바보 조선인'이란 뜻이다. 그 말은 일본어로 표현되는 가장 심한 욕설로서 사실을 심하게 왜곡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그나마 사실은 왜곡하지 않는 ‘왜놈’, ‘쪽발이’라는 말로 일본인들을 욕했다. 다행히도 요즘 한국·일본·중국 사회에서는 그러한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니, 언어로서의 생명력을 다한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언론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사용하는 용어로 ‘코시안(Kosian)’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원래 한국의 한 시민단체에서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자녀'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 용어였다. '한국(Korea)에 거주하는 아시아인(Asian)'이라는 뜻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 용어가 변질되어 '아시아 출신의 이민자와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흑인 혼혈인 또는 백인 혼혈인과 구분되는, 제2세대 혼혈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국제결혼한 부부나 그 자녀들은 자신들이 '코시안'이라고 불리는 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속집단의 대변자가 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그렇게 간주한 적도 있을 것이다. 특히, 특정집단에 대한 부정적 선입관이 작용할 경우, 개인을 '집단의 성원'으로 파악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은 그 대상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인간적 만남을 할 수 없게 마련이다. 예컨대, "이슬람교도들은 과격하고 폭력적이다"라는 부정적 선입관을 가진 사람은 특정인이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그와의 개인적 만남 자체를 기피할 것이다. 집단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 집단의 성원으로 인지되는 개인은 그 선입관 속의 전체를 대변하는 하나의 사례로 환원될 뿐이다.

  ‘죠센진’이 편견을 담은 용어가 된 것처럼 ‘코시안’도 이미 그렇게 쓰이고 있다. 정책 대상 집단을 정확히 꼬집어 지칭하는 용어는 분명히 얼마 안 되는 어휘로 많은 뜻을 포함시켜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담고 있다면 과감히 폐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기술(記述)하는 표현은 사용하되, 적시(摘示)하는 말은 만들지 않는 것이 그들을 배려하는 기본 자세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시안’이라는 말을 우리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듣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설동훈 <'코시안'…강자의 횡포가 만든 '차별의 언어'>에서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