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언어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촘스키는 심리학, 철학, 인지 과학, 정치학 등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범위를 일단 언어학으로 좁혀 볼 때, 촘스키의 학문적 성과는 내용과 방법 양면에서 모두 탁월하다. 대서양 양안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음운자료의 축적에 치중했다. 그리고 당대를 풍미하던 행동주의 심리학은 인간의 언어습득이, 미끼로 비둘기를 훈련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을 때, 촘스키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보편언어설과 언어생득설을 주장했다.
촘스키가 말하는 보편언어란 현상으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자연 언어에 공통된 특성들의 집합을 뜻한다. 그는 언어의 보편원리와 매개변항을 주장했다. 한 마디로 수많은 현존 언어들이 겉으로는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것들은 모두 보편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생득설은 인간이 언어능력을 타고났다는 가설이다. 두뇌 속에 장치된 언어습득 장치에 하나의 촉발장치로서 언어자료를 투여해 주면, 주어진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영양과 조건이 주어지면 팔 다리가 성장하다가 일정 시기에 이르면 정지하는데, 언어 습득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촘스키 학문의 위대함은 이러한 내용뿐만 아니라 방법 면에서도 드러난다. 바로 과학적 엄밀성이다. 언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현상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원리를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큰 바위가 조금씩 작아진다든지,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물이 색을 띤다든지, 소금을 넣었을 때 짠맛이 난다든지 하는, 서로 달리 보이는 현상을 ‘모든 사물은 작은 알갱이(원자)로 이루어졌다’는 하나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과학적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 요소의 분류와 배열 등 가시적인 외형의 발견절차에 주력한 나머지 과학적 설명에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촘스키의 언어 이론은 과학적 설명으로 한 단계 발전하였다. 그는 심층 구조, 변형 규칙, 표면 구조 등의 개념을 통해 언어 현상을 간결한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심층구조가 여러 가지 변형 규칙에 따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문장(표면 구조)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문장에 대해 설명할 때, 그 문장의 의미를 나타내 주는 추상적인 문장 구조(심층 구조)로 바꾼 다음, 탈락․첨가․대치․이동 등의 규칙이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살펴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들을 계층적인 구조도(構造圖)로 나타내기도 하였다.
촘스키 언어학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갖고 있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반화가 미흡하고 예외를 너무 많이 인정해야 했으며, 아직 발화되지 않았지만 발화될 수 있는 가능한 문장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구조주의 언어학이었다. 그러나 촘스키의 언어학은 새로운 개념과 규칙 등을 도입하여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였다. 한 마디로 그가 언어를 다루는 작업은 건실한 과학자로서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장영준 <과학적 엄밀성으로 학문 토대 마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