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습을 하는데 분홍색 마리아 의상이 그렇게 이뻐보일 수 없더라구요!"
막걸리를 마시고 전을 한 입 물고 있을 때, 엄 선생의 이 한 마디가 들려왔다.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이어야 할 물리 선생. 그 선생이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조건 없이 여자 친구가 이뻐 보였다는 말을 했다. 문득 그 말이 오늘의 산행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삶이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아니 이해타산에 의해 살 수만은 없으리라.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살아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산행은 '그냥' 즐거운 산행이었다.
'그냥' 즐거운 산행은 아침부터 예고되었던 거 같다. 날씨가 흐리다는 전날 저녁 일기예보 대로 햇살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어둡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런 날씨가 산행에 가장 좋은 날씨이리라.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김정용, 박상준 선생을 만나 밖으로 나왔을 때 다른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린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다. 박인, 전국주 선생님이 먼저 나와 저쪽이 서 계셨고, 류수근, 엄익환, 정종구 선생님이 곧 모습을 보였다. 10시 15분에 출발할 때는 최상희, 김원우, 이유정 선생과 황보영건, 김병호 선생님이 다 모였다. 요 몇 번의 산행 중에서 가장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지 않기로 했다. 낙성대를 통해 서울대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이 길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냥' 걷기에도 좋은 길이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서울대 기숙사 뒷쪽으로 보이는 관악산이 다정히 우리를 맞는 듯 했다. 황사도 없고 해서 산은 깨끗하게 보였다. 연주대 쪽의 철탑이 유난히 가깝게 보이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울대 기숙사 쪽에서 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역시 박인, 황보영건, 전국주 선생님이 앞으로 차고 나가셨다. 지난 주와 달리 우리 일행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호젓했으며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이 상쾌했다.
"어, 신임 선생들 어디 갔어?"
문득 우리만 가고 있는 것 같아 뒤를 돌아 보니 선생들의 소리는 들리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처지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윽, 윽!'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유정 선생의 계속되는 감탄사였다. 지리 선생이 산을 잘 탈 거라는 나의 상식은 여지없이 깨지고 있었다. 박상준 선생님이 이 선생과 속도를 맞춰 올라 오고 있었다.
넓은 바위 위에 앞서 간 일행들이 앉아 았었다. 김병호 선생님이 최 선생과 이 선생을 도와 바위 위로 올라 오게 했다. 곧이어 정 선생님의 자랑, '오이'가 우리에게 건네졌다. 시원한 오이의 향내가 몸 속으로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이유정 선생의 붉게 상기된 볼도 조금은 옅어진다.
우리의 행렬은 밧줄이 있는 곳에서 또 다시 멈추었다. 최 선생은 아버님과 산을 자주 간단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부터 전혀 뒤처지지 않고 올라오고 있었는데, 밧줄도 잘 타고 올라 왔다. 벙커가 눈에 띄자 '수류탄!'하며 전국주 선생님의 한 마디. 그렇게 우리는 또 한 고비를 점령했다.
하마 바위 앞에 왔을 때 남현동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과 우리는 섞이게 되었다. 지난 주와 달리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엄 선생이 배낭을 열더니 과일을 내놓았다. 딸기, 방울토마토, 키위가 시원해 보였다. 엄 선생은 특별활동으로 등산반을 개설했다고 한다. 어디를 오를 것이냐 했더니 테니스장 동산이라 한다.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1시간 동안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할 수 없이 인터넷 등산이라도 할 거라는 엄 선생의 말이 더욱 재미 있었다.
류수근 선생에게 난 '라면 연구반' 같은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한 시간이면 충분히 라면 하나 끓여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재미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압니까, 그걸 계기로 라면 전문점 사장이 나올지?"
그렇다면 참 보람있는 특별활동 반이 될 것이다. 류수근 선생도 호기심을 가져 본다.
앞으로 치고 나간 선생님들과 우리의 간격이 굉장히 벌어진 듯 하다. 아무리 가도 일행을 만날 수 없었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등산객들이 많아지는 느낌이었다. 문득 연주대까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데다 설령 거기까지 간다해도 등산객들의 정체로 연주대를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헬기장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역시 산에서 먹는 것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도 맛있었다. 박인 선생님이 가져오신 유기농 쿠키가 사람들에게 인기 있었다. 정 선생님이 가져온 배도 향기롭고 맛있었다. 전국주 선생님이 수통에 담아 오신 '알딸딸한 물' 한 잔씩을 돌렸다. 왕필엽 선생님의 맛있는 빈대떡이 아쉽기도 했으나 그런 대로 우리는 구수한 수다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오르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도 많은 데다 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막걸리와 모듬전 생각도 났기 때문이다. 하산도 쉽지는 않았다. 길이 가파른 데다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선생과 류 선생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마도 이 후에 등산화를 장만할 것이다. 저런 경험들을 해 봐야 등산화의 필요성을 알 테니까.
김 병호 선생님은 신임 선생들을 도와 주는 가운데에서도 부지런히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주었다. 이리 저리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이기도 하며 우리는 카메라의 초점을 즐겼다. 김 선생님이 참으로 고마웠다. 총무인 내가 준비해야 할 일이었는데 알아서 챙겨 주시니 말이다.
우리는 서울대 기숙사 쪽에 가까이 왔을 때 마지막으로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결혼 이야기며, 대학 시절의 취미 활동이며, 학생들의 안 좋은 가정 형편이며 많은 얘기들이 오고갔다. 사이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싸늘함마저 느껴지는 바람이었지만 우리는 한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최 상희 선생이 그랬다.
"첫 교직 생활이라 부담이 있었는데, 막상 학교에 와 보니 매우 편한 것 같아요"
하긴 나도 그랬다. 내가 1995년이 이 학교를 왔을 때도 편안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전화가 왔다. 아까 <좋은술자리>에 자리를 마련해 두라고 연락을 했는데, 그쪽에서 자리가 만들어졌으니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머지 길을 잡았다.
내려오면서 김병호 선생님과 2학년 애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심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듯 했다. 결국은 애들과의 상담을 늘리고, 수업 시간을 충실히 하며, 애들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진로지도가 있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또 다시 '기본의 충실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좋은술자리>에 들어서니 박인, 전국주, 황보영건, 정종구 선생님이 자리를 잡고 계셨다. 두부김치에 빈 막걸리 몇 통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얼마 후에 나머지 선생님들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난 김병천, 김찬일 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김찬일 선생은 누구보다도 산행을 즐겨했는데 요즘은 '토끼 같은 딸들' 돌보느라 같이 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막걸리라도 마시며 달래 보라고 불렀던 것이다. 아마도 부인과 딸들의 눈치를 보면서 나왔으리라. 우리는 반가움 속에서 같이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역시 모듬전의 인기가 대단했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두 접시가 비워지고 곧이어 계란말이, 짜장떡볶이 등이 추가 되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맛있었던 것은 선생님들과의 대화였다. 엄익환 선생과 김정용 선생이 내 앞에 있었는데 여자 친구 와 논술팀, 그리고 학교생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신임 선생님들이 논술팀에 대한 의욕적인 말들이 마음에 들었다. 4월 첫주부터 수업이 시작되는데 그것에 대한 준비로 이런저런 생각이 오고가는 듯 했다. 어쩌면 저들의 의욕적인 모습이 우리 학교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리라.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조직의 발전이 있는 것이다. 난 이런 생각을 하며 막걸리를 한 잔 하는 것이었다.
2차로 들른 호프집에서 나왔을 때는 봄비가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봄날씨답지 않게 덥기까지 했는데 반가운 봄비였다. 거기에 봄비 같은 분이 멀다하지 않고 우리에게 나타나셨다. 윤영로 선생님께서 봄비처럼 시원하게 우리를 찾으신 것이다. '그냥' 즐거운 산행의 대미를 장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분위기에 취해 갔다.
'그냥' 즐거운 산행.
내일이면 이것은 우리의 추억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 일상이란 어떤 것인가? 논리적이고, 아니 치졸하게 이해타산적인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다시 학교에서 만날 때는 '그냥' 즐거움은 찾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그냥 즐거운' 산행이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는 '그냥' 즐거운 산행. 난 다음에도 그것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