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열대 우림의 기후, 다민족의 사람들, 고층 빌딩과 현대적인 도로가 내 눈에 들어 왔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나무들과 바닷가, 깨끗한 거리 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은 TV나 인터넷에서 이미 많이 봐 왔던 것들이었기에 그다지 경이로움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아내와 하늘이만이 신나는 얼굴들이었다.
해외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커다란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무래도 미디어의 발달의 힘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싱가폴, 아니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접하다 보니 직접 가보지 않아도 바로 이웃에서 벌어진 일을 경험하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직접 경험한 것들이 새삼스럽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인은 참 불행하다. 직접 접하지도 않고도 많은 것을 이미 알게 되어 버려서 새삼스러운 흥분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 그것을 안고 사는 것이 현대인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상 깊었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차이나 타운에서 본 <헤리티지 센터>였다. 중국인들의 싱가폴 이민사를 볼 수 있었던 그곳은 여느 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그 곳에 화려한 유물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 곳에서는 '추함'이 있었다. 그들을 싱가폴로 오게 만든 가난, 잘 살아보기 위해 닥치는 대로 했던 일들, 더럽고 좁은 부엌, 방 그리고 화장실. 나 같으면 이런 것들은 남들에게 보여주기도, 들려주기도 싫은 것들이다. 꼭꼭 감추고 쉬쉬 할 것들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보란 듯이 내 보이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창녀의 방'을 꾸며 놓은 곳에 이르러서는 충격에 가까웠다. 정말 부끄러운 모습인데, 그것을 저렇게 발가벗듯이 보여주다니…….
그러나 난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차이나타운의 사람들은 그것을 결코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삶이란 어떤 것인가? 고상하고 품위 있는 것이던가? 아니다 그보다 추하고 더럽고 불결한 것들이 더 많은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그 속에서 실존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이리라. 만약 그것을 부끄러워 한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 아닌가? 그들은 싱가폴에서의 성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자손들에게 솔직하게 보이고 싶었으리라. 그것을 통해 삶의 진리를 가르치려는 것이었음을 느꼈을 때, 이 좁고 어두운 박물관이 그 어떤 유명 박물관보다 엄숙하게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렀지만 차이나타운의 사람들을 옳다고 보지는 않는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윤리, 도덕은 저버리고 때로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고 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정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 듣거니와, 차이나 타운 사람들이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행한 것을 마냥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싱가폴 여행에서 난 또 다시 '인생의 줄타기'를 느낀다. 깨끗함과 더러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사람들을 옳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골똘히 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