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은 참 부드러워서 우리들이 하는 모든 짓을 다 받아주었지. 자치기를 하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팔 때면 아무 소리 없이 자기 몸에 구멍을 내 주었고, 땅따먹기하느라 선을 그었다 지웠다 얼룩투성이로 만들어도 땅은 아랑곳하지 않았어. 어디 그뿐이냐? 그런 우리들이 뛰어놀다가 넘어질 때면 행여 다칠세라 맨땅은 부드럽게 우리를 받아주었지. 그래서 아빠는 맨땅 위에서 놀 때면 언제난 안심했단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맨땅을 찾아보기가 어렵구나. 검기도 하고 희뿌옇기도 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온통 덮혀 있으니……. 그래서 자치기도, 땅따먹기도 못하고, 넘어지면 큰 상처를 남기는 그런 땅이 되었어.
그러나 승민이와 친구들은 그에 따라 새로운 놀이를 하더구나.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무선 자동차를 조종하는 너희는, 평평하면서도 딱딱한 콘크리트 길에 참 익숙하더구나. 그런 것을 보면 너희들은 참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힘이 대단한 것 같아.
그런데 승민아, 너희는 놀이를 위해 무슨 준비들을 하니? 아빠는 놀잇감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맸던 기억이 있단다. 자치기를 위해서는 좋은 나뭇가지가 필요했지. 들어봐서 묵직하고, 바싹 마른 것이 좋았어. 땅따먹기를 위한 돌은 모가 적당해야 했고, 너무 구르거나 너무 안 튕겨도 안 되었지. 아빠가 주위의 물건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은 아마 그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아.
승민이는 어떠니? 승민이도 놀이감을 찾아 아빠처럼 하니? 자전거를 살 때 재질은 무엇인지, 안전 장치는 있는지, 기어는 튼튼한지 살펴보니? 아니면 혹시 그 자전거가 광고에 나온 것인지,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인지, 값이 얼마인지를 먼저 따지지는 않니? 만약 승민이가 광고와 유행, 값만을 따진다면 아빠는 매우 걱정이구나. 네가 물건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겉만 꾸미고, 계산에 빠른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란다.
승민아, 현명한 사람이라고 칭찬 받는 사람들은 늘 이 세상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단다. 아인쉬타인은 나침반이 늘 한쪽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에 의문을 품고 그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한 결과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되었지. 또 파브르는 아침에 일어나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그것을 아는 것이 자신의 눈인지 입인지 궁금해서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입을 다물어보기도 하는 방법으로 실험하고 관찰한 결과 오늘날 그 유명한 곤충기를 남길 수 있었단다. 세심한 관찰과 그것을 알아내려는 노력, 그것들이 합쳐질 때 너희들도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는 승민이와 친구들이 드러나 보이는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참된 ‘속’을 찾아내는 그러한 눈을 가진 사람들로 자라났으면 좋겠구나.
어느덧 밤이 깊어 잠들어 있는 네 모습은 다가오는 한가위의 보름달만큼이나 아빠의 마음을 넉넉하고 꽉 차게 하는구나.
승민아!
오늘밤 꿈속에선 아빠랑 만나 옛날의 그 맨땅 위에서 한 번 뒹굴어보지 않으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