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ARI의 희로애락

7 학교 축구동호회 송년회를 뒤로 하고 신대방 역으로 향했다.

선생님들의 재미난 이야기들이 아쉬웠지만 압구정역으로 갔다.

그라미 송년회.

"누가 나왔을까?"

전철 안에서 오늘 나올 사람들을 예상하며 창밖을 보았다.

지하의 어둠이 이어지다 역에 다다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듯이, 우리 그라미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맣게 잊고 있다 불쑥 튀어나오는 그라미의 얼굴들.

 

압구정에서 나는 헤맸다.

그날 따라 핸드폰 베터리도 나가는 바람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야 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버스를 타고 두어 정거장 가야 정도로 멀었다.

유명한 로데오 거리.

이름만 들었지 적이 없는 나는 물어 물어 가야했다.

, 이걸 어쩌나?

<에가오노> 어디에 붙어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없이 나는 집에 전화를 걸어 승민이에게 메일을 뒤지게 전화번호를 간신히 알았다.

"여보세요"

저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여왔다. 익표였다.

 

아담한 퓨전 일식집이었다.

범중이가 운영한다고 하는데, 제법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익은 얼굴들이 밀려 들었다.

서병이 , 동준이 , 범수 , 태환이 , 금희 누나, 흥기 , 진수 , 상규 , 범진이 , 선해 누나, 지원이, 정숙이, 연옥이, 순화, 정배, 현석, 용성, 재영, 진승, 기영, 창화 , 희우 .

동준이 형은 천안에 힘들게 올라 오셨다.

과연  곳도 마다 하지 않고 오시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11시에 막차가 있다고 하시는 말씀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태환이 형은 혈압과 당뇨가 있다고 한다.

금희 누나는 여전히 몸이 좋고,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였다 한다.

해가 우울했을 것도 같은데 예전처럼 자신감과 여유가 돋보인다.

서병이 , 희우 , 창화 , 진수 형이 끝까지 남아 노래방까지 같이 가셨다.

오래 간만에 들어 보는 노래들이 정겹다.

창화 형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사람들의 볼에 입맞춤 하느라 바쁘다.

흥기 형은 사학연금 감사실에 있으면서 여간 바쁜 아닌가 보다.

자신을 보고 가장 놀라운 변신(?)이라는 창화 형의 우스개 소리에 흥기 형은 수긍하는지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고등학생 때의 모습이 어떠했길래 저럴까?

상규 형은 서강대 강의가 늦게 끝나 늦게 합류했다.

대단한 정성이 아닐 없다.

그래도 제일 반가운 것은 8기들이었다.

그들과 늦게까지 남아 카페에 가서 얘기를 나눴다.

여전히 싱글이라는 정숙이, 혼자 되었지만 밝은 모습인 연옥이, 이젠 아줌마가 되어 이제는 여고시절의 부끄러움은 사라진 지원이, 사업하느라 바쁜 재영이.

옛날 그들과 같이 자장면을 나눠 먹으며 얘기를 나눴던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우리는 무슨 얘기를 나눴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으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추억은 기억하라고 있는 것일까, 잊으라고 있는 것일까?

 

범진이 형과 둘이서 잔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시간은 오전 6.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러나 머리는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무겁고, 아프고, 속은 울렁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 감독을 하면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으면 되었다.

그러나 2007 그라미 송년회는 나를 다시 따스한 과거의 추억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추억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있기에 나는 잠시나마 행복감에 젖는 것은 아닐까?

 

그라미 사람들이여.

내년에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Posted by pop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