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다. 아니, 어머니는 꽃이셨다.
어제 어머니를 하늘로 보냈다.
26일 밤 운동을 위한 가벼운 발걸음이 장례를 위한 무거운 발걸음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침대 위에서 내려와 딱딱한 방바닥에 눕고 싶다는 말 한 마디가 내가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었다.
어머니로 하여금 내 허벅지를 베게 하고 난 어머니의 얼굴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앉으시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셨다.
난 어머니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왜 그리 가볍던지, 영혼의 무게가 그리도 무거웠던가?
난 어머니를 앞으로 볼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 어머니가 느낄지도 모른다는 고통이 더 걱정되었다.
어머니는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은 날 안심시켰다.
두 번의 혈압상승약과 두 차례의 수혈.
그것이 내가 해 준 다였다.
난 어머니께 이렇게 하직 인사를 드렸다.
"엄마, 사랑해. 잘 가."
난 어머니의 얼굴에 내 얼굴을 묻었다.
눈, 코, 입, 뺨 그 모두를 내 머릿속에 넣으려고 보고 또 보았다.
차가운 내 가슴 어디에서 이런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
그리고 그 눈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늘로 가야하는 어머니의 슬픔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고아가 된다는 나에 대한 연민 때문일까?
난 억제할 수 없는 눈물을 한없이 쏟아냈다.
오전 7시.
어머니의 심장이 멎었다. 그와 함께 어머니와 내가 가졌던 이승에서의 인연도 끝났다.
난 창문을 통해 안양천 쪽을 보았다.
날이 밝아 오고 저쪽 굴뚝에서 한 무더기의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 시각, 어머니는 일생을 마감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와 주었다.
작은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고모부들이 수시로 왔다갔다 하면서 살펴 주었다.
상욱이와 상현이는 계속해서 자리를 지켜 주었다.
상현 부인은 늦은 시간까지 문상객들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그라미 선후배들(인선, 창화, 희우, 태환, 영권, 흥기, 진수, 수영, 범진, 형선, 선해, 헌동, 은종, 재영, 미정, 연옥, 정숙, 범중, 정배, 은영, 진승, 인식, 용성)
국교과 친구들(정묵, 길제, 상규, 기홍, 태호, 재환, 진모, 기명, 호준, 흥기)
고룡회 선후배들(성용, 재호, 성혁, 일평, 철웅, 승업, 재영, 승엽, 승식, 태환)
삼환, 정훈, 기형이.
학교 선생님들.
모두들 나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벽제 승화원 오후 두 시.
어머니는 한 줌의 하얀 가루가 되어 나오셨다.
그것을 난 영원히 옆에 두고 싶었다. 유골을 집으로 가져가고 싶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추모의 집에 봉안했다.
난 보광사에 봉안하고 싶었다.
1년에 한두 번 등산을 하면서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주위 눈치를 살피느라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그리고 가슴에 묻는 것밖에 더 이상은 없다.
난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러나 무뚝뚝 하여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든 자식은 다 불효자인가?
난 불효자다.